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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뒷통수 친 구글… 이건희 회장 ‘고민이 현실로’

특명 “제2의 노키아 사태 막아라”

김희정 기자 | 기사입력 2011/08/23 [13:32]

삼성 뒷통수 친 구글… 이건희 회장 ‘고민이 현실로’

특명 “제2의 노키아 사태 막아라”

김희정 기자 | 입력 : 2011/08/23 [13:32]
16일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 오전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 이건희 회장이 승용차에서 내리자 대기하고 있던 이재용 사장과 함께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지난 4월 11일 정례 출근을 시작한 이후 늦어도 오전 8시 30분을 크게 넘기지 않았던 관례와 비교하면 이례적으로 늦은 출근길이다.
이 회장은 이날 최지성 부회장과 신종균 휴대전화부문 사장, 윤부근 TV부문 사장 등 완제품 사업부 책임자들을 42층 회의실로 불러 구글의 모토로라 인수가 불러올 파장에 대한 보고를 듣고 토론도 벌였다.


▲     ©운영자

전문가들 “삼성 스마트폰 운명 3년 안에 결판난다”…향후 행보 관심

스마트폰 시장재편 구도…삼성전자 자체 OS ‘바다’ 개발에 박차


최근 이 회장은 전자 및 금융계열사 사장단으로부터 급격한 불황에 빠져들고 있는 반도체 시장 상황과 글로벌 경제위기와 관련한 동향을 보고받았다. 한창인 나이 때에도 좀처럼 회사에 출근하지 않고 사저인 승지원에서 주로 업무를 처리했던 것과는 거리가 있는 모습이다. 그만큼 그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삼성은 그동안 특검과 경영권 승계 등 주로 사업 외적인 문제들로 인해 이러저런 문제에 휩싸여왔다. 하지만 이번엔 이건희 회장이 늘 강조하던 삼성의 존립과 먹고사는 문제와 관련된 ‘근원적인 위기’에 부딪치게 되었다.

이 회장은 “삼성에 대한 글로벌 견제가 만만치 않다”며 자가 진단했다. 또 구글의 모토로라 전격 인수로 인해 가뜩이나 경쟁이 치열한 스마트폰 시장이 더욱 혼전 양상으로 치닫게 될 것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이 회장은 경영 복귀 일성으로 “앞으로 10년 안에 지금 삼성을 대표하는 모든 제품이 사라질 것이다. 앞만 보고 가자”며 공개적으로 수차례 위기의식을 공공연히 밝힌 바 있다. 지난달 29일 선진제품 비교전시회에서는 소프트 기술, S급 인재, 특허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5년, 10년 후를 위해 지금 당장 확보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사장단을 강하게 독려하기도 했다.

구글의 말바꾸기 속내는

구글이 15일 모토로라 모빌리티를 125억달러(13조5125억원)에 인수한다고 밝히자 삼성전자를 비롯한 LG전자 HTC 등은 즉시 환영한다는 뜻을 내비쳤다. 하지만 구글의 말 바꾸기에 속내는 배신감과 근심으로 어우러져 있다.

애초 구글이 안드로이드 OS를 내놨을 때부터 삼성전자를 비롯한 제조사들은 구글이 향후 휴대폰 제조업에 뛰어들 것을 우려했다. OS와 단말기를 모두 자체 제작한 애플처럼 구글도 장기적으로는 ‘구글판 아이폰’을 만들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그 때마다 구글은 제조업에 진출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거듭 강조하며 제조사들을 안심시켰다. 제조사들이 구글에 뒷통수를 맞았다고 생각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더구나 삼성전자는 소프트웨어에서 구글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상태다. 지난 2분기 삼성전자가 판매한 스마트폰 1920만대 중 약 1700만대가 구글의 안드로이드폰이었다. 안드로이드폰 업체 1위인 삼성전자는 구글의 선전 포고로 애플에 이어 구글과도 경쟁을 벌여야 한 판이다.

목적은 ‘구글판 아이폰’ 생산

전문가들은 삼성전자의 현 상황이 위기라고 진단한다. 애플은 하드웨어인 아이폰과 소프트웨어 운영체제를 아우르는 막강한 독자 왕국을 이미 구축하고 있다. 노키아도 MS와 손을 잡고 연합전선을 펴고 있지만 삼성전자만 ‘외톨이’ 신세다.

과거 난공불락의 세계 1위로 군림해왔던 노키아는 휴대폰 시장이 일반 휴대폰에서 스마트폰으로 전환되는 시기에 잘 적응하지 못해 몰락했다. 전문가들은 삼성전자와 LG전자가 구글의 모토로라 인수가 불러올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경우 제2, 제3의 노키아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앞으로 삼성은 애플뿐 아니라 같은 편으로 여겼던 구글과도 밀고 당기는 긴장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구글이 모토로라를 인수한 배경에는 애플 모델이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애플은 자체 OS를 바탕으로 단말기까지 제작하며 어마어마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 지난 2분기에만 2034만대의 아이폰을 판매해 매출 285억7000만달러, 순익 73억1000만달러를 기록했다. 매출과 순익은 전년 동기 대비 각각 82%, 100% 증가했다. 구글도 휴대폰 제조업체인 모토로라 인수로 단말 제조 경쟁력에 안드로이드라는 자체 플랫폼을 얹어 애플과 같은 스마트폰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인 셈이다.

특허권 확보도 중요

특허권 확보도 중요한 목적 중 하나다. 애플과 특허 전쟁을 벌이는 구글로서는 1만7000건의 통신 특허를 보유한 모토로라의 인수 가치가 충분하다. 비록 실패했지만 구글이 지난달 노텔의 특허 6000개를 9억달러에 인수하려고 했던 것도 이와 궤를 같이 한다.

구글은 블로그를 통해 모토로라 모빌리티의 인수가 애플 등 경쟁업체로부터의 특허 공세를 막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구글은 최근 MS와 애플로부터 특허권 침해 소송에 시달려 온 것이 사실이다. 실제 지난달에는 MS사가 안드로이드에 자사 기술이 무단 도용됐다며 휴대폰 제조사들과 직접 협상을 벌여 대만 HTC에게 휴대폰 1대당 5달러씩 로열티를 받기로 합의했다. 삼성전자는 대당 10달러 이상의 특허료를 요구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모토로라는 오랜 기간 휴대전화 사업을 해온 만큼 애플에 밀리지 않는 특허권 방어 능력을 갖췄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실제로 모토로라는 현재 애플에 18개의 특허침해 소송을 진행 중인 반면 애플은 모토로라에 6개의 소송을 걸고 있다”며 “내용을 떠나 단순 비교로만 따지면 모토로라의 특허권 방어 능력이 애플에 비해 결코 수세적인 입장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존 파트너에 대한 간섭과 견제 우려

구글이 자체적인 스마트폰 제조기반을 확보한 만큼 앞으로 삼성전자와 HTC 등 생산능력을 가진 기존 파트너에 대한 간섭이나 견제를 강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포브스지와 인터뷰한 한 시장 전문가는 구글이 안드로이드는 오픈 플랫폼으로 유지한다고 했지만 앞으로 파트너업체들에게 안드로이드폰 생산에 대해 간섭하거나 직접 견제하는 수위를 높여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

16일 KB투자증권 조성은 애널리스트는 “표면적으로는 1만7000여개의 특허권을 인수해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의 특허 공세를 방어하는 데 인수의 목적이 있다. 그러나 속내는 구글이 애플이 되고 싶은 것이다. 안드로이드 OS 제조사의 입지 약화는 불가피해 보인다”고 분석했다.

조신 지식경제부 R&D전략기획단 정보통신 매니징 디렉터는 “안드로이드를 계속 무료로 제공하겠다는 구글의 발표를 액면 그대로 믿을 수 없다”며 “모토로라를 인수한 만큼 장기적으로 단말기 사업에도 욕심을 낼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타임스도 15일(현지시각) “2~3년 안에 구글이 자사가 만든 휴대전화에 다른 업체들은 사용할 수 없도록 하는 기능을 도입하기 시작할 것이라는 주장이 미국 IT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성균관대 정보통신공학부 정태명 교수는 “한국 휴대폰 업체들도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아우르는 회사로 변신을 시도해야 한다”면서 “변신여하에 따라 삼성전자 스마트폰의 운명은 길어야 3년 안에 판가름이 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가 살아남을 방법

결국 삼성전자가 살아남을 방법은 실력을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 국내 스마트폰 업체들은 안드로이드 진영에서도 알아주는 강자다. 지난 1분기 전 세계 안드로이드폰 생산량의 26%는 삼성전자가 만들었다. 월스트리트저널의 IT 전문매체 올싱스디는 삼성전자가 모토로라의 운명을 결정할 것이란 기사를 실었다.

삼성전자 등 주요 휴대전화 업체들이 지금처럼 모토로라보다 월등한 제품을 쏟아낸다면 구글은 결국 직접 생산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매체는 구글이 모토로라의 특허·연구기능만 남기고 제조부문은 아예 중국에 팔아 버릴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국내 휴대폰 제조업체들은 일단 지켜보자는 입장인 가운데 삼성전자의 향후 행보에 이목을 집중하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가 마이크로소프트(MS)의 윈도 모바일을 탑재한 윈도폰 점유율을 얼마나 늘리고 안드로이드 OS 의존도를 얼마나 줄여나갈 지가 주요 관심사다.

삼성전자는 현재 해외에서 윈도폰을 출시했고 이르면 연내 국내에서도 윈도폰을 출시할 계획이다. 시장조사업체 IDC에 따르면 윈도폰 점유율은 올해 5.5%에서 2015년 20.9%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는 등 미래가 밝은 상황이다.

MS의 노키아 인수 가능성이 거론되는 가운데 삼성전자는 향후 MS와도 경쟁 구도로 접어들 수 있지만 안드로이드폰과 윈도폰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며 입지를 넓힐 수 있는 셈이다.

삼성 ‘바다’ 카드 띄운다

삼성전자는 이에 대한 전략으로 독자적인 모바일 운용체계(OS) ‘바다’ 생태계를 대폭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8월 16일 “이르면 다음 달 ‘바다 2.0’ 버전을 탑재한 스마트폰 ‘웨이브3’를 국내외 출시할 예정”이라면서 “우선 KT 출시가 확정된 상태고 SK텔레콤과 막바지 협상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바다 2.0은 여러 작업을 동시에 실행할 수 있는 멀티태스킹, 근거리 무선통신기술(NFC), 음성인식, 차세대 웹 언어(HTML5) 등의 기능이 대폭 강화될 예정이다. 세계 통신사업자 통합앱스토어(WAC)를 지원, 안드로이드 마켓·삼성앱스 등과 병행하는 ‘멀티 앱 마켓 전략’도 힘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가 독자 OS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은 구글의 모토로라 인수에 따른 스마트폰 업계 시장재편 구도와 무관하지 않다. 애플에 이어 구글마저 OS와 하드웨어(HW)를 일괄 생산하는 체계를 갖추면서 삼성전자도 OS 경쟁력 확보가 발등의 불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노키아도 마이크로소프트(MS)와 강력한 파트너십을 맺고 사실상 ‘윈도폰’을 선점하고 있는 양상이다. 애플·구글·노키아 등 메이저업체가 사실상 독자 OS로 전환한 것에 대한 자구책 마련이 시급해진 상황이다.

삼성전자 한 임원은 “최근 MS·오라클 등 글로벌 SW기업의 특허사용료 요구로 독자 플랫폼인 ‘바다’에 대한 효용성이 다시 부각되는 상황”이라며 “굳이 ‘바다’로 완전 전환하지 않더라도 ‘바다’의 존재감이 커지면 구글·MS 등과 멀티 플랫폼 소싱 협상카드로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삼성 ‘바다’는 지난주 가트너 2분기 모바일 OS 시장점유율 조사에서 처음으로 MS ‘윈도 모바일’을 제쳤다. 노키아가 자체 OS ‘심비안’ 개발을 중단하고 리서치인모션(RIM) 자체 OS ‘블랙베리 OS’는 급속히 사용자가 주는 것을 감안할 때 안드로이드·iOS 등에 이은 제3의 모바일 OS로 부상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최지성 삼성전자 부회장은 “구글의 모토로라 인수는 이미 예상했던 일이다.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며 담담한 반응을 보였다. 최 부회장은 또 “삼성이 자체 운영시스템(OS)을 가지고 있고 마이크로소프트의 OS도 활용할 수 있다”며 ”휴대폰 사업이 단순히 OS만 가지고 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며 자신감을 피력했다.

김희정 기자 penmoim@sisa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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