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코리아=고승주기자] 과거 소 판 돈으로 다녔다고 하여 대학을 ‘우골탑’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이제 우골탑은 옛말이 됐다. 지금은 인골탑이라 불린다. ‘사람의 뼛골까지 빼먹는다’는 씁쓸한 뜻에서다. 이는 학생들의 과장된 엄살이 아니다. 2010년 OECD에 따르면 한국의 등록금은 OECD기준으로 미국에 이어 2위, 소득 대비로는 1위로 세계에서 가장 등록금이 비싼 나라로 기록됐다. 대학측은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며 돈을 부르짖지만 실질적인 경영과 감사 그 어느 부문에서도 신통치 않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대학의 현주소를 <시사코리아>가 조명했다.
대학 용도 없는 눈먼 돈만 2조4155억…기타 적립금이란 명목으로 떠다녀 이사회 견제 방안 유명무실…교과부와 사립대간 모종의 관계 의혹 “공부하게 해달라” 거리로 나온 학생들 끈적이는 땀이 옷을 적시는 6월. 기말시험공부에 바빠야 할 대학생들이 더위를 마다하지 않고 삼삼오오 서울 청계광장에 몰려들었다. 촛불 하나 손에 쥔 학생들의 얼굴은 사뭇 비장하다. 단순히 등록금 인하가 목적이기 때문은 아니었다. 생존을 건 급박함이 그들을 더욱 내몰고 있기 때문이다. 80년대 초반 한국의 대학등록금은 100만원 아래 수준이었다. 하지만 89년 등록금 자율화조치가 내려지면서 인상률은 춤을 추기 시작했다. 82년 이후 등록금 인상률은 평균 2∼4%를 기록했지만, 자율화가 진행되기 시작한 90년부터는 12.7%로 훌쩍 뛰어 오른 것을 시작으로 91년 15.5%, 92년 15.5%, 93년 16.2%, 94년 13.5%, 95년 13.7%, 96년 13.7% 등 7년 연속 10% 이상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정부는 날뛰는 등록금을 잡기 위해 물가 상승률의 1.5배 이상을 인상하지 못하도록 등록금 상한제를 통과 시켰지만 20년 동안 불려놓은 몸집이 워낙 큰 탓에 체감효과는 미비한 실정이다. 2010년 OECD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1인당 국민소득(GDP) 대비 한국의 국공립대 등록금 비중은 16.8%로 일본(13.6%), 미국(12.9%)를 제치고 가장 높았고, 사립대 부담률은 미국(47.8%)에 이어 2위(30.3%)를 기록했다. 교수 한명 당 학생수 33명 미국 사립대 수는 전체 대학의 3분의 1, 미국내 전체 대학생 중 30%가량이 사립대를 다니는 반면 한국 대학생은 80%가 사립대에 다닌다. 거기에 소득 대비 등록금 비중은 OECD 중에서 가장 높아 실질적으로는 세계 최상위급의 비싼 등록금을 치르고 있는 셈이다. 반면 교육의 질은 이에 따라가고 있지 못했다. 질적 수준을 나타내는 ‘(전임)교원 1인당 학생 수’의 경우 한국은 1명의 교수당 33명을, 다른 OECD 국가들은 16명을 가르치고 있다. 그렇다고 학생입장에서는 대학교를 다니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사람 취급을 하지 않는 혹독한 사회실정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라는 절박함은 대학 진학률 80%, 매년 2~300명의 대학생 자살이란 기형적 수치를 낳고 있다. 조상식 동국대 교수는 “지금은 필요해서 배우는 게 아니라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대학에 진학한다”며 대학의 불가피성을 역설했다. 장수명 한국교원대 교수는 “개인의 합리적 선택을 국가가 방해한 것이며 국가가 등록금을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등록금 의존율 50% 이상 대학이 등록금을 포기할 수 없는 주된 이유는 등록금이 대학 재정의 절반 이상을 부담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내 20개 사립대의 재정수익에서 등록금이 차지하는 비율은 66.4%를 기록했다. 한성대는 84.2%로 가장 높은 의존율을 가지고 있었고, 광운대(82.1%), 서강대(75.0%)가 뒤를 이었다. 20개 대학 중 가장 낮은 성신여대가 49.4%, 그 위로 고려대 51.2%, 성균관대 54.7%를 기록함에 따라 대부분 재정의 50% 이상은 등록금에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다보니 대학들이 등록금을 올리는 꼼수도 기기묘묘하기 그지없다. 2009년 등록금 동결을 선포한 서울대는 올해까지 3년 연속 동결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2009년 평균 등록금은 전년도보다 2.3% 인상된 607만원, 2010년에는 2.3% 늘어난 621만원을 기록했다. 서울대와 마찬가지로 3년 연속 등록금을 동결했다는 경북대, 공주대, 충북대, 전북대의 경우도 학생 1인당 평균 등록금이 해마다 1.6~4.4%씩 올랐다. 이외에도 많은 대학들이 1% 미만 범위에서 평균 등록금이 올랐다. 이 간극은 어떻게 발생한 것일까. 대학 등록금 인상 어떻게? 이 기현상은 등록금 차등인상제 때문이다. 신입생이나 졸업생만 차등적으로 비싸게 물리고, 나머지 재학생들을 동결하는 식으로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대측은 “신입생들은 재학생보다 더 개선된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는 혜택을 누리기 때문에 수익자 부담원칙에서 신입생 등록금을 더 올려 받는 것”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다른 대학 관계자는 “차등 인상 여부도 (학교측과 학생회가 협상하는) 등록금심의위원회에서 결정된 것”이라며 “학생회측도 재학생들로 구성되기 때문에 신입생의 등록금 인상폭을 높이는 대신, 재학생의 인상폭을 낮추는 결정에는 큰 반발이 없다”고 말했다. 일부 대학들은 신입생 등록금을 올리지 않고 아예 입학금이란 명목으로 따로 고액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외국어대, 고려대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립대가 100만원 안팎의 입학금을 받았다. 인상요인도 이상하기만 하다. 인하대와 한성대는 “교직원들의 연금과 의료보험료 등 법정부담금이 늘었다”는 이유로 등록금을 인상했다. 한양대도 마찬가지였으나 타 대학과 경쟁력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등록금 격차를 줄이기 위해”란 황당한 이유를 하나 더 덧붙였다. 법정부담금은 사립학교교직원연금법과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라 학교가 아니라 법인이 부담하는 돈이다. 덕성여대와 이화여대, 중앙대 등 14곳은 ‘장학금을 확대를 위해’, 명지대는 ‘2개 건물 증축, 1개 건물 신축하는 캠퍼스마스터플랜’, 선문대도 ‘국공유지 매입비 25억원’등의 이유를 달았다. 임은희 한국대학교육연구소(이하 한교연) 연구원은 “전체 사립대가 2009년 한 해 동안 토지 매입비와 건물 매입비 또는 신축비에 들인 비용 1조2000억여원 가운데 사학법인 부담금은 10.8%에 불과하다”며 “대학들이 건물을 짓고 늘리는 비용이 학생 등록금 부담 증가의 주요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2조4155억 적립금 행방은 인상 만큼이나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것이 적립금이다. 등록금은 인건비, 자재비, 수업료 등등의 명목으로 지출되어야 하지만 상당수 사립대들은 쓰지 않고 적립금이란 명목아래 모아두고 있다. 이러한 사립대 적립금은 연구적립금과 건축적립금, 장학적립금과, 퇴직적립금 등 사업적 용도에 따라서 나뉘어 적립되지만 기타 적립금은 사용처가 불분명한 돈이다. 민주당 김춘진 의원이 지난 2월 공개한 ‘2009년 사립대학 용도별 적립금 현황’에 따르면 이화여자대학교는 지난 2009년까지 쌓아둔 6280억원의 적립금 중 절반(42.73%)에 가까운 2683억원을 기타 적립금으로 쌓아두었다. 경희대 (67.9%), 중앙대 (51.5%), 국민대(49.2%), 서강대(40%), 고려대(35%)등 서울과 수도권 일부 사립대들은 30~60%가량을 기타적립금으로 적립했다. 이렇게 전국 133개 4년제 사립대가 쌓아둔 기타적립금은 2조4155억원으로 전체 적립금의 34.8%을 차지했고, 건축적립금은 3조2000억원으로 46.05%에 달했다. 반면 장학적립금은 5954억원(8.76%)에 불과했다. 교과부와 대학은 기타 적립금을 사용처가 정해지지 않은 기부금이라고 하고 있지만,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은 마음대로 횡령하고 유용할 수 있는 검은 돈으로 보고 있다. 이유는 내역을 절대로 공개하고 있지 않아서다. 한교연 임희성 연구원은 “용도를 정하지 않은 기타적립금은 비교육적인 용도로 사용될 수 있다. 하지만 대학들은 관련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적립금 운영내역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교과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교과부도 적립금 운영현황에 대한 내용 공개를 추진하고 있다”고 하면서도 “이 돈을 사용해야 한다고 정부가 지시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전했다. 감사 의지 전혀 없는 대학 실효성 있는 감사도 늘 뒷전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한교연이 발표한 ‘사립대학 부정·비리 실태와 개선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설립 이후 한 번도 정부로부터 종합감사를 받지 않은 4년제 사립대는 78개교로 전체 49.8%를 차지했다. 적립금 규모가 상위 10위권 안에 드는 고려대, 연세대 등 주요 사립대도 이에 속했다. 이에 대해 사립대에서는 자체감사를 하고 있다며 항변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허술하기 그지없었다. 한교연이 120개 사립대를 대상으로 조사한 2009년 내부감사보고서에 따르면 법인이 의무적으로 부담해야 하는 법정부담금을 납부하지 않은 대학은 100곳에 달했지만, 이를 지적한 곳은 2개 대학에 불과했고, 수익용 기본재산을 법적 기준만큼 확보하지 않은 대학은 92곳이나 되었지만, 단 한 곳도 이를 지적하지 않았다. 재정 건전성의 책임을 맡고 있는 이사회도 과도한 권한, 족벌주의로 얼룩져 있다. 사립학교법에 따르면 이사회는 예산, 임명, 경영, 정관 의결등 대학 대부분의 주요사항을 자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 이토록 대학의 숨통을 쥐고 있건만 이사회를 재제할 수 있는 실질적인 기관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사 중임에 제한도 없는 대학도 있다. 2010년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설립자의 직계가족이 이사장, 총장 등 요직을 맡으면서 족벌경영을 하고 있는 대학은 60여개 대학에 달했다. 정부에서는 2007년 사립학교법이 개정하면서 이사회 정수 4분의 1을 대학평의원회에서 추천한 개방이사를 뽑도록 했지만, 전체 대학 중 13.2%가 개방이사 자리를 전·현직 총장 등 법인 또는 학교 측 관계자로 앉히거나 고려대·이화여대·연세대처럼 아예 한 명도 뽑지 않은 대학도 15개나 되었다. 일부 사립대 관계자들은 이를 폐지하자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교과부에서는 딱히 제재를 하는 등의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2695억 횡령해도 ‘눈 딱감아’ 대학도 정부도 감사나 투명화에 의지를 보이지 않다보니 내부 부정도 극심하다. 2010년 사립대학 회계 및 종합감사에 따르면 22개 대학에서 횡령 및 유용한 돈은 무려 2695억원으로 기록됐다. 명지재단은 명지병원의 인건비 147억여원을 관동대 교비에서 부당 지출했으며 길의료재단은 1999년부터 2008년까지 매년 경원대의 전임교직원 3~5명을 같은 재단 산하의 경원인천한방병원에 파견, 수업은 주당 평균 1.8시간 기초강의만 하면서도 전임의 인건비인 6억9904만원을 교비로 부담했다. 이러한 부당 지출에는 재단 이사장과 대학 총장들의 이름도 빠지지 않았다. 남서울대는 이사장 개인비서의 월급과 차량 관리비, 신호위반 등으로 낸 과태료 등 1억원이 넘는 금액을 교비로 빼내썼다. 또 총장을 포함 보직자 63명에게 업무추진비를 제외한 별도의 용도로 총 10억 8375만원을 급여로 지급했다. 대전대와 경북대는 규정에 없는 수당을 책정해 급여로 지급했다. 2007~2010년까지 4년간 대전대는 부속병원 의료진 30여명에게 30억 6415만원을 지급했고, 경복대는 2007년과 2008년 교직원들에게 특별수당 명목으로 1억 3810만원을 나눠줬다. 개인이 학교 발전을 위해 내놓은 기부금은 교비가 아닌 법인으로 빠져나가기도 했다. 성신여대는 제2캠퍼스를 조성한다고 모금한 58억 641만원 중 44억 1423만원을 법인이 빼갔다.관동대는 하나은행이 스마트카드시스템 구축비용으로 내놓은 90억원 전액을 법인 운영비로 사용했다. 정작 시스템 구축비용에 들어간 31억 2143만원은 교비에서 부담해야 했다. 하지만 교과부는 7명만 횡령 등의 혐의로 수사기관에 고발했을 뿐 대부분 경고나 주의 조치로 종결시켰다. 교과부 관계자는 “사립학교법 등에 의거해 적정한 수준으로 처벌했다”고 해명했지만, 민주당 김유정 의원은 사립대와 교과부간 모종의 관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실의 김종무 보좌관은 “대학들이 장학금까지 주면서 공무원들을 학교 동문으로 만들려는 것은 감사를 피하거나 감사에 적발됐을 때 방어막 역할을 해달라는 의도”라고 전했다. 고승주 기자 gandhi55@sisakorea.kr <저작권자 ⓒ 시사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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