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 하면서 세금은 한 푼도 안 낸다.”
사업하는 사람에게 꿈만 같은 일이겠지만 당연히 현실에선 불가능하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기업들은 10원이라도 세금을 내지 않으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런데 지난 11일 김문수 국세청 차장은 그 꿈만 같은 일이 일어났다고 발표했다. 김 차장은 역외탈세 혐의로 “지난 5년간 9600억원의 소득을 탈루한 한 업체와 사주에 4101억원의 세금을 부과했다”며 “전 세계 어느 곳에서도 세금을 내지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해당 업체의 사주는 본명과 회사명을 언론에 공표하며 적극적인 반박에 나섰다.
국세청 “대리명의와 위장 회사는 명백한 탈세 의도” 절세와 탈세의 경계는 미묘하다. 이 둘의 목적은 같다. 세금을 덜 내거나 안 내는 것이다. 다른 점은 방법이 합법이냐 불법이냐의 차이일 뿐이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세금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므로 합법적인 절세를 하려면 인위적인 ‘춤’을 춰야 한다. 세금을 최대한 적게 내려고 하면 할수록 해야 할 춤은 복잡해진다. 그러다보면 다리가 꼬이고 아차 하는 사이 선을 넘게 된다. 합법과 위법사이에서 벌어지는 아슬아슬한 줄타기에서 떨어진 것이다. 탈세 범법자? 난 국가에 기여한 애국자 단일 사건으로는 사상 최대의 추징금을 받은 시도상선의 사주 권혁 회장이 언론 앞에 나섰다. 권 회장은 단지 절세를 했을 뿐 조금도 세금을 탈루하지 않았고 도리어 해외에서 돈을 벌어 국내에 기여했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시도상선 탈세 사건에서 주 쟁점은 시도상선의 기반이 국내냐 외국이냐는 것이다. 국세청은 시도상선이 세법상 국내에 기반을 두고 있으므로 과세의 대상이 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권 회장은 외국에 법인을 두고 있는 회사라고 반박했다. 권 회장은 “역외탈세란 것은 한국사람이 외국에 투자해서 나오는 소득을 숨기는 것이지만 나는 맨손으로 일본에서 사업을 했고, 한국에서 해외로 투자하거나 자금을 이동한 경우는 단 한 건도 없다”고 항변했다. 그는 “일본에서 사업할 때 20억엔을 세금으로 냈고, 2006년 홍콩으로 본거지를 옮긴 후에는 홍콩에 냈다”고 덧붙였다. 해외 회사가 국내와는 관련없이 해외에서 활동했으니 당연히 과세도 해당 국가에 내야 한다는 것이다. 권 회장은 이와 관련해 거주지 이야기도 꺼냈다. 권 회장이 한국에서 살면서 해외에 사업을 할 경우, 과세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권 회장은 이 건에 대해서는 문제될 것이 없다고 말했다. 연간 180일 이상 국내에서 머무르지 않으면 국내 비거주자로 취급되기 때문이다. 권 회장은 사업을 시작한지 단 한 차례를 제외하곤 이를 철저하게 지켰다. 권 회장은 이번 추징이 해운업에 대한 몰이해에서 나왔다고 말했다. 권 회장은 “전 세계 해운회사가 다 페이퍼 컴퍼니로 시작한다. 배 한 척당 페이퍼 컴퍼니 하나다. 배 한 척으로 인한 손해가 다른 배에 전가되지 않기 위해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권 회장은 자신이 탈법자가 아닌 애국자라고 주장했다. “한국 조선소로부터 최근 5년간 선박을 3조7000억원어치를 발주했고, 국내에 선박 보험료로 년간 100억원 넘게 들어주고 있다. 난 해외로 돈을 빼돌린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해외에서 벌어서 한국에 줬다” 는 주장이다. 국세청 돈 번 곳은 한국 하지만 국세청의 입장은 다르다. 국세청은 해외 위장 본사나 수십개의 페이퍼 회사는 수단에 불과할 뿐 본질적인 문제는 소득 발생처에 있다고 전했다. <시사코리아>와 통화한 국세청 관계자는 “시도상선은 경영 내용 중 99%가 한국에서 이루어졌다. 외국인이 외국계 회사를 운영한다고 하더라도 실질적인 경영이 국내에서 이루어진다면 국내에 세금을 내야 하는 것과 같다”고 답했다. 그는 현재 이러한 자료가 검찰로 넘어가 수사가 이루어져 있다고 말했다. 권 회장이 일본과 홍콩에 세금납부한 사실에 대해서는 “개인의 발언에 대해 따로 국세청이 말할 것은 없다”면서 “집중해야 할 점은 벌면 세금을 내야 한다는 사실에 있다. 페이퍼 컴퍼니가 마치 세금을 탈루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그것은 아니다. 소득이 발생했다면 반드시 소득이 발생한 곳이 있다. 그리고 소득을 발생시킨 사람(명의)이 있다. (권 회장은) 자신이 사업했으면서도 자신의 이름(명의)을 사용하지 않았고, 실질적인 경영이 이루어진 회사를 마치 해외본사가 대리점(에이젼시)에 대리업무를 준 것처럼 위장했다. 우리는 이것을 움직일 수 없는 의도(탈세의도)로 파악하고 있다”고 답했다. 권 회장은 서울에 있는 대표자리를 그만두고 경영활동은 최대한 전산망에 남지 않도록 구두나 서면지시 혹은 USB를 통해 비밀리 영업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세청에 따르면 조세 부가 대상자 기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누가 어디에서 소득을 발생시켰느냐’는 것이다. 소득이 발생한 지점이 명확하다면 아무리 페이퍼 컴퍼니가 있어도 해당 지역에서 세금을 내야 한다. 실제로 국내에서 활동하는 기업이라면 대기업, 외국계기업 구분없이 국내에 세금신고를 하고 있다. 이들은 페이퍼 컴퍼니를 운용하지만, 탈세가 아닌 경영상의 위험부담을 최소화하는 방법으로만 사용한다. 국세청이 밝힌 ‘전 세계 어느 곳에서도 세금을 내지 않았다’는 발언은 내야할 적정 세금을 전 세계 어느 곳에서도 내지 않았다는 뜻인 것이다. 페이퍼 컴퍼니 악용 국세청은 권 회장이 수익을 숨기기 위해 페이퍼 컴퍼니를 악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페이퍼 컴퍼니가 설립된 지역은 법인세 및 기타 조세가 거의 없다시피한 버뮤다, 케이만군도, 홍콩 등으로 이들 회사의 활동은 해당 지역의 세법의 영향을 받으므로 해당 세금이 부여되지 않는다. 국세청은 권 회장이 이 과정에서 선박 임대수수료나 선박 발주 리베이트에 대한 세금 및 법인세가 사라졌다고 보고 있다. 이렇게 발생한 수익금 일부는 국내에 투자했다. 호텔, 공장은 외국회사의 명의로 보유했으며 부동산에도 투자했다. 나머지는 조세 피난처에 예금으로 예치해두었다. “세상에는 절대 피할 수 없는 딱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죽음, 다른 하나는 세금.” 벤자민 프랭클린의 말이다. 국세청이 조세포탈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함에 따라 권 회장도 소송에 대한 뜻을 밝히면서 사건의 추이는 수년간 재판을 통해 가려질 예정이다. 아직 정확하게 가려진 것은 없다. 단 이것만은 분명하다. 250년 전 벤자민 프랭클린의 시대도 그랬듯이 인류역사가 존재하는 한 소득에 대한 세금은 반드시 발생한다. 죽음처럼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고승주 기자 gandhi55@sisakorea.kr <저작권자 ⓒ 시사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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