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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cebook에서 만난 사람 - 심상정 의원] - '꽃보다 할매'를 만나고 왔습니다

맹인섭 기자 | 기사입력 2014/03/09 [05:50]

[facebook에서 만난 사람 - 심상정 의원] - '꽃보다 할매'를 만나고 왔습니다

맹인섭 기자 | 입력 : 2014/03/09 [05:50]
 
 
『'꽃보다 할매'를 만나고 왔습니다』
                                                                             
                                                                                     심 상 정

여성분들, 오늘 장미꽃 한 송이씩 받으셨나요? 아직 화이트데이도 아닌데 무슨 장미꽃이냐고요?

네. 오늘은 106주년 세계 여성의 날입니다. 여성의 날을 상징하는 것이 빵과 장미인데요. 빵은 여성의 생존권을, 장미는 여성의 존엄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1900년대 초 공장에서 일하던 미국의 여성 노동자들이 열악한 노동환경과 저임금에 항의하며 시위를 벌인 데서 유래된 것이 세계 여성의 날...이니 이해될 만도 하지요?

저는 오늘을 기념하기 위해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에 위치한 ‘나눔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나눔의 집’은 지난 1992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님들께 삶의 터전을 마련해드리자는 취지로 불교계를 비롯한 사회 각계의 모금을 통해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처음 건립되었으며, 지난 1995년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으로 옮겨 현재는 10명의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거주하고 계십니다. 우리나라에서 여성의 인권을 이야기하면서, ‘위안부’ 피해 할머님들의 가슴 아픈역사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는 없겠지요.

마침 오늘은 한 달에 한 번 있는 할머님들 ‘이미용 날’이었습니다. 제가 도착했을 때즈음, 하얗게 서리가 앉은 할머님들 머리를 봉사하시는 미용사 분들께서 정성스레 다듬어주고 계시더군요. 덕분에 할머님들의 더욱 고운 모습을 보는 행운을 얻었지요. 그런 할머님들께 장미꽃 한 송이씩을 전해드렸는데, 할머님들의 모습은 장미꽃에 비할 바가 아니었습니다.

특히 지난달 저희 정의당의 초청으로 국회를 방문한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일본 총리와 만나기도 하셨던 박옥선(90)․이옥선(87)․강일출(86) 할머님은 제 손을 꼭 붙잡아주시면서 더욱 반갑게 맞이해 주셨습니다. 사실 전 세 분 할머님들께 내심 송구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날 무라야마 전 총리와 좀 더 긴 대화의 시간을 갖게 해드리지 못해 참 죄송스러웠거든요. 하지만 할머님들께서 제 손을 꼭 잡아주시니 근심이 스르르 사라지더군요.

무라야마 전 총리와 할머님들의 만남과 관련해 한 가지 뒷얘기를 드리자면, 몇몇 언론에서는 화면에 내보내기도 했지만, 우리 강일출 할머님께서 그날 무라야마 전 총리에게 “(‘위안부’ 문제는) 일본이 책임져야 해요!”라고 아주 당당하고 단호하게 말씀을 건네셨습니다. 옆에 있던 저도 짐짓 놀라 무라야마 전 총리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지켜보았지요. 하지만 무라야마 전 총리는 별말씀 없이 묵묵히 할머님들의 손만 꼭 잡고 계시더군요.

그러던 무라야마 전 총리가 바로 다음날 있었던 국회 강연에서 “여성의 존엄을 빼앗은 형언할 수 없는 잘못”이라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책임을 분명히 하셨지요. 전날 ‘위안부’ 피해 할머님들의 작품 전시회를 보며 “차마 말이 나오지 않는다.”며 자신의
심정을 피력하던 그가 자신의 양심에 호응하는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것은, 할머님들이 보여주신 용기에 강한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리라 짐작합니다.

그리고 며칠 전에는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유엔 인권이사회 기조연설을 통해, 우리 외교수장으로서는 처음으로 ‘성노예(sexual slavery)’라는 표현을 직접 써가며 아베 내각의 태도가 역사적 진실을 외면한 반인도적, 반인륜적 처사라고 비판하기도 했는데요. 우리 정부가 이 같이 국제사회에 일본의 입장을 강도 높게 비판하는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것 또한 할머님들의 용기 있는 태도가 디딤돌 역할을 했으리라는 자부심을 느낍니다.

돌아오기 전에 강일출 할머님께서 제게 그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우리 명예를 회복시켜달라고 하는 것은 다른 게 아니다. 우리 후세를 위해서다. 우리 후세들에게 똑같은 역사가 반복되는 것을 절대 용납할 수 없다.”

그렇습니다. 이건 단지 과거의 문제만도, 개인의 문제만도, 한일 양국 간 외교의 문제만도 아닙니다. 역사의 문제이며, 전 세계 여성의, 인류의 보편적인 인권과 존엄의 문제입니다. 저는 종종 이 매듭을 반드시 풀어내지 못하고서는 우리 역사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문제들이 있다는 느낌을 받는데요. ‘위안부’ 피해 할머님들의 명예를 온전히 회복해내고, 이것이 후세에 분명히 기억되게 하는 것이 바로 그러한 매듭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저희 정의당은 지난 12월 김제남 의원의 주도로 ‘위안부’ 피해 할머님들의 명예 회복과 실질적인 생활 지원을 위한 법안을 전체 의원단이 함께 발의했습니다. 이 법안이 신속히 국회에서 통과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아울러 여성의 인권과 존엄을 위해, 역사의 전진을 위해 앞으로 노력하겠다는 약속의 말씀을 드립니다.
 
 
mis728@sisa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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