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cebook에서 만난 사람-심상정 의원]"박근혜 정부, 미·일·중 대화 촉진자(facilitator) 돼달라..."
맹인섭 기자| 입력 : 2013/12/05 [08:58]
[facebook에서 만난 사람- 시리즈 2]
이 글은 중국의 방공식별구역(ADIZ)선포로 촉발된 동북아 국제정세의 불안을 놓고 야권 일부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외교가 실패했다는 설익은 주장이 나오는 가운데, 비록 국회일정이지만 상황파악과 해법모색을 위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러 중국으로 출국하는 심상정 의원이 출국 전날 facebook에 국민과 팬들에게 쓴 지극히 정치적인 글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냄새가 물씬 나고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이 절절히 묻어납니다. -편집자 주-
[전문] 1.매우 오랜만에 이곳을 통해 여러분께 인사드리게 된 것 같네요. 그동안 트위터를 통해서는 자주 소통했는데, 여기서 찬찬히 글을 쓰고 또 읽을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2.뉴스를 통해 소식 접하신 분도 계시겠지만, 오늘부터 3박4일의 일정으로 강창희 국회의장과 함께 중국을 방문합니다. 이제 곧 출국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번 방문 중에 시진핑 국가주석을 비롯해, 우리나라 국회의장에 해당하는 장더장 전인대 상무위원장 등을 예방할 계획입니다.
3.어젯밤 여야가 국회 정상화에 합의하여 오늘부터 다시 일정이 가동되는 시점에 외국으로 나가는 것이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만, 이미 오래 전에 계획되었던 공식 국회외교 일정이라 변경하는 것도 불가능했습니다.
4.어젯밤 중국 방문을 준비하며, 최근 격화되고 있는 동북아 정세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보았습니다. 여러분들과도 한번 나눠봄직한 이야기일 것 같아 아래에 남깁니다. 여러분들 생각은 어떠신지도 나눠보면 좋겠습니다. 그럼 귀국 후에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5.최근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의 기정사실화와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선포, 그리고 이에 뒤따른 미-일과 중국 간의 무력시위로 인해 동북아 정세가 격랑에 휩싸이고 있습니다. 특히 중국정부가 이어도 상공을 포함해 우리나라 방공식별구역과 겹치는 새로운 방공식별구역을 일방적으로 선포한 것은, 한-중 간에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가 성숙되어가는 시점에 벌어진 일이라는 점에서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지금과 같이 미-중 간의 동북아 패권경쟁이 격화될 경우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곳은 바로 우리 한국입니다. 따라서 현 시점은 군사적이고 감정적인 대응은 자제하고, 모든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 미-중 간의 팽팽한 긴장관계를 해소하고,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질서를 담보할 수 있는 전략적 접근을 모색해야 할 때입니다.
그런 점에서 현재 정부가 추진 중인 방공식별구역 확대 검토는 충분히 이해할 만한 방안이긴 하나, 과연 우리의 전략적 이익의 범위 내에서 바람직한 것인지 더욱 신중히 검토돼야 할 것입니다. 또 한편으로 새누리당 일각에서 제기되는 △이어도 방어를 위한 이지스함 도입 △해군 작전허가지역 확대 등 군비확장식 대결주의적 주장은, 주변국의 호전적 대응을 또 다시 촉발시킨다는 점에서 더욱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박근혜 정부가 주력해야 할·일은 미-중 간의 대결국면을 대화국면으로 전환해내는 것입니다. 박근혜 정부에서 의지를 가지고 나선다면, 현재의 동북아지역 내 군사태세 강화 흐름이 대화를 통한 긴장 해소의 방향으로 전환되도록 물꼬를 터주는 ‘촉진자(facilitator)’ 역할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한-미동맹 60년 역사와 취임 후 세 차례의 정상회담을 거치며 성숙되어온 한-중관계의 발전적 모멘텀을 지금 이 시점에 활용하고, 성과를 거둬야 합니다. 바로 그것이 박근혜 정부 외교안보정책의 양대 축 가운데 하나로 제기된 ‘동북아평화협력구상’을 의미 있게 실천하는 길일 것입니다.
아울러 박근혜 정부는 그간 쌓아온 외교적 성과를 활용하여 현재의 중차대한 국면에서 주도적으로 발언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결국 남북관계 개선이 관건이라는 점을 직시해야 합니다. 남북관계 개선 없이는 미-중 간의 대화를 촉진하는 역할은커녕 패권경쟁의 격랑에 휩쓸려, 우리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동북아 ‘신(新) 냉전질서’ 속에 편입될 우려가 매우 높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마침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이 일본, 중국을 거쳐 내일 박근혜 대통령을 예방하기로 돼 있습니다. 바이든 부통령이 중-일 양국에 양국 간 위기관리체제 구축을 제안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박근혜 정부가 미-중 간 대화 촉진자의 역할을 할 수 있는지 가늠하게 될 첫 번째 시험대가 될 것입니다.
박근혜 정부가 현재의 엄중한 동북아 정세를 국내정치용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유혹을 뿌리치고,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한반도 및 동북아 평화를 위한 현명하고 내실 있는 외교력을 발휘해주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