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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5.18민주화운동’, 16세 소녀가 태극기 휘날리며 흘린 피..

80년 5월 민주화운동.. 계엄군에게 모진 고문 후유증..

오승국 기자 | 기사입력 2024/05/19 [02:02]

‘광주 5.18민주화운동’, 16세 소녀가 태극기 휘날리며 흘린 피..

80년 5월 민주화운동.. 계엄군에게 모진 고문 후유증..

오승국 기자 | 입력 : 2024/05/19 [02:02]

  오승국 기자 사진설명=오남경(미국이름 O NAM KANSAKI)

 

[시사코리아=오승국 기자] 80년 5월 꽃다운 어린 소녀(오남경 만,16세)가 금남로 도청 앞에서 ‘아침이슬’ 노래를 부르며 계엄군 총칼 앞에 맞서다 무참히 짓밟혔다. 

 

오남경씨는 전라남도 완도 바닷가 어촌에 태어나 중학교를 졸업 하고, 고등학교 입학을 위해 광주로 상경했다. 공부를 위해 상경한 그해 5월 광주 민주화운동이 시작됐다. 

 

오 씨는 민주주의가 뭔지도 몰랐던 철부지 어린 소녀였었고, 주위의 친구들과 선배들이 총칼에 쓰러지는 현장을 목격하고, 가슴 한켠에 있는 젊은 혈기에 여자라는 신분도 잊은 채 시위해 동참할 수밖에 없었다.

 

‘광주 5.18민주화운동’에 동참한 오남경씨는 시위 도중 계엄군 칼에 상처를 입고, 전남대학교 선배가 서울의 식당(대진식당)에 은신처를 마련해 줬다.

 

피 비린내 진동한 광주항쟁 현장에서 피신 한 오 씨는 5월 25일 누군가의 제보로 들이닥친 불신 검문에 걸렸다. 

 

16세 어린 소녀는 광주에서 왔다는 이유로 경찰에게 연행되었으며, 어디인지(중앙정보부)는 정확히 알수는 없었지만 갖은 폭력으로 한동안 정신을 잃고 깨어나 보니 어두컴컴한 조명과 불쾌한 냄새가 진동한 공간에 놓여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또, 경찰신분증을 보여줬던 그들은 고문에 이어 몸을 만지며 옷을 벗기려 했다. 사투 끝에 몸을 빼앗기지는 않았지만 인간 이하 취급하면서 잠도 재우지 않았다.

 

오남경씨는 3개월 동안 교도소에서 시위에 연관된 정치인, 대학생들 이름을 대라고 모진 협박과 고문을 받다 집행유예 선고를 받고 풀려나 고향인 완도에 내려가 치료를 받았지만, 몸에 난 상처보다 “스스로 만든 자기 세계에 갇혀” 정신적 후유증이 심했다. 오씨는 1차 법정에서는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차 항소심에 ‘집행유예’로 풀려나 지금은 사면받아 자유의 몸이 되었다.

 

오씨는 중학교 시절 해외 펜팔로 알고 지낸 오랜 친구(ERIC KANSAKI)에게 자기 사정을 이야기하고, 미국 초청장을 2여 년 만에 발급받고 캘리포니아로 갔다. 그때 당시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않은 대한민국에서 반공법(反共法)은 국가 반역자로 인식되어 출국 자체가 힘들었다.

 

▲ 김대중 전, 대통령 자택(우측 뒤 두번째 오남경씨)  © 오승국 기자

 

미국 가는 길은 순탄하지도 않았다. 그때 당시 대한민국 국민은 해외를 나가기 위해서는 반공 교육을 받고 신원조회를 통과하는 사람만 출국 할 수 있었는데, 오 씨는 5.18민주화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반공법(反共法) 전과기록이 남아 미국으로 가는 길이 좌초될 위기에 처했다.

 

이에 엄마, 오빠, 언니가 힘을 모아 고위직 공무원에게 뇌물(돈)을 주고 나서야 신원조회가 통과되어 미국으로 갈 수 있었다. 지금은 그때 당시 친구인 ‘에릭 캔샤키’(ERIC KANSAKI)와 결혼해 오남 캔샤키(O NAM KANSAKI) 이름으로 샌디에이고에서 지내고 있다.

 

▲ 좌측 오남경, 가운데 김대중 전대통령  © 오승국 기자

 

또, 오 씨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한화갑 전, 국회의원하고 친분이 두터워 김 대통령 집으로 초대받기도 했다. 대선 후보 시절에는 한국을 방문해 응원하기도 했지만, 대통령 당선이 되어 취임식 때와 청와대에 초대 받기도 했다. 그때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 박지원 현 국회의원 당선인으로부터 연락은 받았지만 몸 건강상 문제가 발생해 참석하지 못했다. 

 

오남 캔샤키(O NAM KANSAKI)씨는 5월 그날이 오면 약속이라도 한 그것처럼 머릿속에 남아있는 악몽 같은 기억이 찾아온다. 모진 협박과 고문에 상처받은 정신적인 고통에 힘들어하는 날이 많다. 민주주의를 위해 앞장선 오 씨는 친구, 선배, 이름을 팔아서 자유의 몸이 되고 싶었지만, 한국의 미래를 생각하며 혹독한 고문을 견뎠다.

 

지난 80년 전두환 정부 시절 중앙정보부에서는 선량한 국민을 잡아다 고문하고, 군사 독재정권을 반대하는 사람을 잡아다 죄를 만들어 간첩을 만들어 정권 연장에 이바지 한 곳이기도 하다.

 

지난 80년 5월 어린 16세 소녀의 ‘못다 핀 꽃’은 머나먼 타국 미국에서 공부하며, 전두환 정부에 대한 만행을 전 세계에 알리면서 그때의 아픔 시간을 ‘다시 피어난 꽃잎’이라는 한 권의 책으로 발간하기도 했다. 이 책은 1997년 5월 20일 발간 되어 대중들로부터 큰 관심을 받기도 했다.

 

▲ '다시 피어난 꽃잎' 책 증정  © 오승국 기자

 

오남경(미국이름 O NAM KANSAKI) 씨는 그날을 회상하면서 “숱한 고문에 두려움과 공포에도 고향과 이름을 끝까지 숨기는 것은 고문에 대한 공포가 가족 형제까지 끌고 와 나와 같이 하는 게 두렵기도 하고 무서웠다.”라며 “내 나이가 16세이고 완도경찰서 신원조회까지 확인한 경찰은 나를 간첩으로 몰고 가기 위해 1주일, 2주일인지는 알 수 없지만 연행된 사람들을 각목으로 때리고 물고문에 사람을 알몸 상태에 눕게 하고, 구둣발로 짓밟은 행동은 인간에 대한 인권은 찾아볼 수 없었다”라고 하면서 몸서리치며 회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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