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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삼성가의 ‘왕따’였다

삼성가 2세의 난 2라운드

고승주 기자 | 기사입력 2012/03/06 [10:06]

우리는 삼성가의 ‘왕따’였다

삼성가 2세의 난 2라운드

고승주 기자 | 입력 : 2012/03/06 [10:06]
한국 최고의 재벌가라고는 하지만 삼성 2세들의 운명이 모두 순탄한 것은 아니었다. 아버지에게 반항하던 장남은 야인이 되었고, 아버지의 권위에 도전한 차남은 삼성가와 단절되었다. 일찍이 LG가로 출가한 차녀는 외인이 되었다. 삼성 2세 장남 이맹희씨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대상으로 건 상속소송에 차녀 이숙희씨가 동참했다. 일각에서는 단순히 권력구도에서 밀려나 숨죽여 왔던 2세들의 반란에서 그치지 않고 한국 1대 재벌인 삼성그룹의 지배구조까지 뒤흔들 수 있다는 예측마저 내놓고 있다.


▲     © 운영자

‘몰래 상속’ 이건희 회장에 뿔난 형제자매들…전형적인 재벌가 상속싸움
차녀 이숙희 “남편따라 LG로 간 게 아니라 삼성에서 쫓겨난 것”

“삼성은 오빠(이맹희)에게 나쁘게 대했다.” 이숙희씨가 수십년간 다물어 왔던 삼성가의 이야기를 꺼낸 것은 지난 2월 28일 한 종합편성프로그램을 통해서였다.

고 이병철 창업주는 박두을 여사 사이에서 3남 5녀를 거둬들였다. 장녀 이인희(한솔그룹 고문)를 시작으로 장남 이맹희, 차남 이창희, 차녀 이숙희, 3녀 이순희, 4녀 이덕희, 3남 이건희, 5녀 이명희씨다.

<시사코리아>와 인터뷰한 삼성그룹 관계자는 “상속은 창업주의 판단하에 이루어졌고, 25년 전에 끝난 문제다”라고 답했지만, 이맹희씨 소송에 참가한 이숙희씨가 본인도 삼성생명 차명주식 상속건에 대해 몰랐다고 고백하면서 이번 상속소송이 단순히 이맹희씨의 불같은 성정 때문이라고 말하기 어렵게 됐다.

이병철 창업주는 1971년 가족들에게 이건희 회장을 후계자로 선언한 비밀 유언장을 시작으로 1987년 타계하기 전까지 후계구도와 상속문제를 마무리했다. 장녀 이인희 한솔그룸 고문에게는 고려병원·전주제지·호텔신라를, 장남 이맹희씨에게는 재산을 주지 않는 대신 부인인 손복남씨에게 안국화재(현 삼성화재) 일부 지분을, 차남인 이창희(91년 작고)씨는 제일합섬을 물려받았다. 차녀 이숙희씨는 한푼의 재산도 받지 못했고 3녀 이순희, 4녀 이덕희씨도 두드러진 재산을 받지 못했다.

후계자 3남 이건희 회장에게는 삼성전자, 삼성물산, 제일모직 그룹의 핵심계열사를 주고 5녀 이명희 신세계 그룹 회장에게는 신세계백화점과 조선호텔 주식을 물려줬다. 분배과정에서 분명히 차등이 있었으나 당시 이에 대해 직접적으로 항의한 인물은 없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이맹희씨에게 직접 상속은 하지 않았지만 처인 손복남씨와 아들인 이재현 CJ그룹 회장을 통해 간접상속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전혀 상속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아니다. 또 이숙희씨는 경쟁사 ( LG)로 출가한 탓에 재산을 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가족이긴 하나 엄연히 명의가 다른 재산이었기에 이맹희씨는 아내(손복남)와 큰 아들(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상속분에 손가락 하나 댈 수 없었다.

숨겨진 재산 언제 알았나

창업주가 분배결정을 하고 당시 누구도 이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고는 하나 ‘숨겨진 재산’울 몰랐던 자녀들이 후일 소송을 거는 것은 법리적 하자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이에 대해 삼성그룹 관계자는 “당시 기업공개촉진법 때문에 오너의 지분이 회사의 10%를 넘을 수 없어서 대부분의 기업이 차명 형태로 재산을 관리했으며 이를 다른 상속인들도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번 소송에 대해 삼성가 2세들 중 장녀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이 “이미 25년전에 끝난 일을 다시 제기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말한 것 또한 바로 이 부분을 지적한 것이다. 이에 이맹희씨 및 이숙희씨는 전혀 몰랐던 ‘재산’이라고 답하고 있다.

삼성가의 ‘숨겨진 재산’이 공식적으로 드러난 것은 2008년 삼성특검 때의 일이다. 이건희 회장은 특검 때 드러난 숨겨진 재산을 본인명의로 바꾸어야 했다. 이에 2011년 6월 국세청은 여타 상속인들에게 연락해 이 재산이 이건희 회장의 소유가 되는 것에 대해 이의가 없느냐는 의사를 전달했고, 중국에 거주하던 이맹희씨의 경우 이때 처음 ‘삼성가의 숨겨진 재산’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이건희 회장측에서는 최소한 상속인들이 2008년 삼성특검 때 재산의 존재를 알았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상속 청구권의 저촉기간으로 권리침해를 안 날로부터 3년, 상속권의 침해 행위가 있었던 날로부터 10년까지로 되어 있기 때문에 2008년에 인지했을 경우 소송할 수 있는 시효가 지나간 셈이 된다.

반면 이맹희씨의 주장대로 2011년 6월에 권리침해 사실을 알았다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상속 청구권의 저촉기간에 대해 법조계에서도 의견이 팽팽히 나뉘어지고 있어 명확한 판단은 법정에서 내려질 전망이다.

끊이지 않는 삼성가의 숙명

한편 이숙희씨는 숨겨진 상속분만이 아니라 애초에 재산분배과정에서도 불공정했다는 입장이다. 이숙희씨는 “(오빠가) 무능하기 때문에 재산도 못 내준다는 식으로 삼성이 몰고 갔다”며 “오빠에게 힘이 되어 주고 삼성의 부당대우를 참을 수 없어 소송을 제기했다”고 전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삼성그룹 관계자도 이와 같은 응답을 했다는 점이다. <시사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해당 관계자는 “장남 이맹희씨는 창업주가 무능하다는 판단 하에 처인 손복남씨와 장손인 이재현씨를 통해 상속을 했다”고 전했다. 이맹희씨는 손복남씨와 이재현씨가 운영하는 CJ의 경영에 참여한 적도 없고 지분도 가지고 있지 않다.

이숙희씨는 자신도 오빠처럼 삼성가의 피해자라고 고백했다. 자신의 남편인 구자학 아워홈 회장도 연루되어 있다고 전했다. 구자학씨는 고 구인회 LG그룹 창업주 3남으로 지금은 삼성 및 LG그룹과 무관한 아워홈(급식사업 부문 1위)을 경영하고 있지만 그도 처음에는 삼성가의 일원이었다.

구자학씨는 사위라고 해도 삼성가에 들어왔으면 삼성에서 일해야 한다는 이병철 창업주의 원칙 하에 제일제당과 동양TV의 말단사원부터 시작하면서 이병철 창업주의 신임을 쌓아갔다.

1973년 삼성그룹이 영빈관 부지를 매입해 호텔사업에 뛰어들면서 구자학씨는 1974년 초대 호텔신라 사장으로 선임되었고, 같은해 삼성에버랜드의 전신인 중앙개발의 대표이사까지 겸임하며 토대를 굳건히 쌓았다.

그러나 삼성그룹이 1969년 이건희 회장의 추진으로 전폭적으로 반도체 사업분야를 확장하게 되자 이보다 앞서 미국 AT&T사와 함께 반도체 사업을 추진하려던 LG(당시 금성사)의 구인회 창업주는 격노하며 삼성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1976년 구자학씨는 삼성가에서 자신이 맡고 있는 모든 직함을 내려놓고 아내 이숙희씨와 함께 LG가로 돌아갔다.

이숙희씨는 이 과정에서 말하지 못했던 사정이 있었다고 전했다. 남편이 호텔사업부 및 중앙개발을 맡으며 입지가 탄탄하게 굳어지자 삼성 내부에서 중상모략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 중상모략에 밀려 남편은 삼성가를 떠날 수 밖에 없었고, 자신도 상속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편 구자학씨는 1988년 LG반도체의 키를 잡고 90년대 중반까지 처남 이건희 회장과 반도체 부문에서 치열한 접전을 벌이다 IMF로 인해 반도체 사업부를 현대전자에 매각하고 2000년 외식사업인 아워홈을 챙겨 LG그룹에서 출가했다. 그러나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에버랜드의 급식사업을 맡으면서 다시 한번 삼성가와 맞부딪히고 있다.

삼성 위기설, 이명희 회장이 열쇠 쥐어

차녀 이숙희씨가 요구한 상속분은 삼성생명 주식 223만1873주와 삼성전자 주식 보통주 및 우선주 각 10주를, 삼성에버랜드에 삼성생명 주식 100주와 소멸시효가 지나지 않은 10년간 이익배당금 중 1억원 및 지연손해금을 청구하는 등 소송가액은 1980억원대이다.

이에 따라 이맹희씨가 청구한 금액 7100억원에 더해져 삼성가는 총 9120억원대 상속소송을 풀어가야 한다. 이숙희씨는 여기에 추가로 차명재산에 대해 수천억원대 소송을 제기할 예정임을 밝히면서 추후 소송가액은 조 단위를 넘을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승소할 경우 돈만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현재 삼성그룹의 핵심은 이건희 회장이 20.76%로 1대주주로 올라서 있는 삼성생명으로 삼성생명이 삼성전자를 삼성전자가 삼성카드를 지배하고 있다. 과거 삼성그룹은 삼성카드가 삼성에버랜드를 지배하고 삼성에버랜드가 삼성생명을 지배하는 순환출자 구조였으나 2011년 금융회사가 제조업체 지분을 4%이상 보유하지 못하도록 금산법이 개정되면서 삼성카드는 자사가 보유한 삼성에버랜드 지분을 매각해 수직구조로 개편했다.

그런데 이맹희 및 이숙희씨가 승소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되면 이건희 회장의 1대주주로서의 위치가 위태로워지면서 삼성그룹이 갈라질 위기에 처할 수 있다.

현재 삼성에버랜드는 이건희 회장의 자녀가 대주주로 있고, 삼성생명은 이건희 회장이 20.76%로 1대주주를 유지하면서 삼성전자 및 삼성카드를 수직으로 지배하고 있다. 삼성에버랜드는 삼성생명의 19.34%의 지분을 차지해 2대 주주의 위치를 지키고 있다.

소송으로 이건희 회장이 삼성생명 주식을 잃게 되면 삼성에버랜드가 삼성생명의 1대주주로 올라서게 되고 삼성생명은 금산법에 따라 자신이 가지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을 4%미만 수준까지 낮추어야 한다. 이렇게 되면 그룹의 척추인 삼성전자를 잃게 될 수도 있다. 이것이 삼성그룹 붕괴설의 주장이다.

하지만 이건희 회장 외에 삼성생명 지분을 가지고 있는 삼성문화재단(4.68%) 삼성생명공익재단(4.68%)등 우호지분과 삼성생명 2대주주인 삼성에버랜드가 이건희 회장에게 지분을 몰아주면 패소한다고 해도 지배권 방어에는 큰 타격을 주기는 힘들다는 반론도 제기되고 있다.

때문에 재계에서는 5녀 이명희 신세계 그룹 회장의 행보에도 귀추를 주목하고 있다. 이건희 회장 본인과 이건희 회장 지지를 밝힌 이인희 고문을 제외하면 나머지 형제 자매들 중 가장 영향력이 큰 것은 이명희 회장이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해 이병철 창업주 24기 추도식 때 이명희 회장과 정용진 부회장이 불참한 것은 삼성가와 이명희 회장과 갈등이 표면적으로 드러난 것이 아니겠느냐란 예측을 부추기고 있다.

고승주 기자 gandhi55@sisa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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