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가 발주한 관사가 실은 업체들의 막후 공작으로 인해 부풀려진 가격이라는 것이 최근 공정위에 의해 드러났다. 공정거래위원회는 10월 9일 군 관사시설 공사에 입찰한 서희건설 계룡건설에 대해 담합혐의 등으로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77억원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공정위는 국방부가 경쟁을 자극하고 공정하게 평가하기 위해 입찰 평가 항목에서 가격 부분은 40%, 설계·운영 등 비가격부분을 60%로 구성했지만 이들 업체는 대범한 방법으로 이를 회피했다고 밝혔다.
점점 대범해지는 가격담합 수법 <시사코리아>가 조명해봤다.
커피 한잔에 오간 억대 거래…최대 가격 부풀려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 힘든 사업계획서에 꼬리 밟혀 [시사코리아=고승주기자]국방부의 대표적인 군 지역인 계룡대와 자운대. 이곳은 육해공 각 군의 의료나 교육과 같은 전문업무 및 국군의 주요업무를 담당하는 통합 부대이다. 워낙 규모가 크고 업무에 종사하는 인력이 많아 아예 군 가족을 위한 주거환경 및 위락 및 편의시설, 체육 문화 시설이 존재한다. 일종의 군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대기업 건설사가 투입되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나 지자체 관급 공사와 규모면에서 차이가 나긴 한다. 하지만 군 공사 중에서 계룡대나 자운대에서 발주하는 공사는 일단 대대나 연대급 막사 공사와는 격이 다르다. 이것은 수주를 원하는 중소업체도 마찬가지다. 사건의 발단은 2007년 9월 28일 국방부가 계룡대와 자운대에 새로운 관사와 부속시설 및 놀이시설을 민간투자사업 형식으로 발주하면서 시작했다. 민간투자사업이란 국가나 지자체가 필요한 건물을 민간사업자가 지어 주는 것으로 민간사업자는 국가나 지자체가 지불하는 임대료를 통해 투자금을 회수한다. 담합 위한 은밀한 회동 국방부에서 제시한 계약금액은 646억원. 계룡건설산업과 서희건설이 입찰에 참여해 서희건설이 최종 낙찰됐다. 하지만 이상했다. 국방부는 애초에 담합을 막고 업체간 경쟁을 자극하기 위해 안전장치를 마련했다. 사업자가 제시하는 사업계획서를 평가할 때 가격부분 비중은 40%, 설계 및 운영 부분을 평가하는 비가격부분을 60%의 가중치를 준 것이 그것이다. 이렇게 짠 이유는 업체 간 능력 차이를 쉽게 판단하기 위해서였다. 원료나 자재 등 가격부분은 어지간해서는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설계나 건물디자인, 시공운영 능력은 엄연히 업체의 노하우라든가 기술에 의해 얼마든지 달라진다. 그림으로 비유하자면 가격부분은 물감과 그림도구, 비가격 부분은 그리는 사람의 미술 실력인 것이다. 이 둘의 그림은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에는 가격이나 설계, 모든 면에서 대동소이했다. “부정거래를 인지하기 위해서는 세부적으로 대단히 많은 부분을 검증해야 한다. 이 기법에 대해서는 (조사 기밀이므로) 자세히 말해줄 수는 없지만 두 업체의 사업 제안서 상 서로 상이점이 없었다는 것이 담합 의혹이 발생하게 된 첫 단추였다.” 해당 사건을 담당한 공정위 관계자가 <시사코리아>에 귀띔한 말이다. 사업과 관련 회사내부에서 오간 보고서들에도 이상한 점이 발견됐다. 양 업체는 어느 특정시기부터 유사한 내용의 보고서를 쏟아낸 것이다. 양 업체의 담당자가 공정위에 소환되고 숨겨진 부정의 내막이 드러났다. 2008년 3월 11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인터컨티넨탈 호텔. 서희건설 관계자와 계룡건설사업 관계자가 이 호텔 커피숍에서 은밀한 만남을 가졌다. 두 관계자들은 이미 서로의 요구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가장 중요한 이야기는 이번 공사에 입찰을 할 때 서로 군에서 고시한 사업비 646억원에 맞추어 최대한 가격을 부풀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설계가 걸림돌이었다. 설계는 어떻게 해도 정확하게 양쪽이 맞출 수 없는 것이었다. 또한 잘하려고 하면 할수록 돈이 들어가는 것이 이 설계 및 운영부분이다. 어쨌든 사업을 수주하면 이득이기 때문에 양측이 노력하면 할수록 차이는 벌어지게 되어 있다. 그만큼 사업체가 부담하는 투자금은 늘어난다. 이들은 과감하게 수주에 대한 욕심을 포기했다. 누가 선정되든 이익을 볼 수 있도록 서로 동일한 가격, 동일한 설계 투자비에서 선을 긋자고 결정한 것이다. 보통 건설 담합은 이렇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어느 한쪽을 밀어주기 위해 다른 업체기 밀어주기 식의 사업제안서를 내놓는 식으로 이루어진다. 바람잡이가 되는 업체는 일부러 높은 가격으로 써내거나 터무니없는 운영, 그리고 설계상 허점을 만들어 목표 업체를 띄워준다. 공정위 관계자는 “일부 공사의 경우 기술 및 설계를 90%로 잡고, 가격(원재료) 10%로 평가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 경우도 업체들끼리 사전에 모의해 낙찰될 건설사를 선정한다”고 전했다. 이들처럼 서로 동등한 가격으로 입찰하지 않는 것은 마지막 제출하는 사업제안서에서 한 업체가 수주욕심에 빠져 사업비를 내리거나 아니면 설계를 좀 더 잘하는 식으로 다른 업체를 배신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담합이 목표 업체, 즉 바람잡이 업체를 나누어 왔던 것은 형식상 편리한 부분도 있지만 이런 배신행위를 막기 위한 하나의 안전장치이기도 했던 것이다. 두 업체는 약속을 지켜 결국 둘 다 국방부에 99.93%에 달하는 금액을 요구하고 동일한 부풀리기 사업제안서에 의해 서희건설이 낙찰됐다. 그러나 두 업체의 평가점수 차이는 1000점 만점에서 0.37점에 그쳤다. 담합 적발업체 공공부문 입찰 못한다 공정위 관계자는 <시사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이들 업체는 어느 업체가 선정되든 탈락 업체에게 용역을 주는 방식으로 10억원을 보상해주기로 했다. 설계에서도 서로 차이점이 없도록 합의했다. 전에 없는 대담하고 교묘한 수법이었다”고 전했다. 공정위는 서희건설과 계룡건설산업에 대해 공정거래법 ‘부당한 공동행위 금지’ 조항을 위반한 사실로 시정명령과 함께 각각 51억6600만원과 25억83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고 9일 밝혔다. 김순종 공정위 카르텔조사국장은 “과징금 액수를 정할 때 법이 정한 최고 부과 기준율인 10%를 적용하는 등 강력 제재했다”고 말했다. 최근 공정위의 활동이 활발해짐에 따라 담합업체에 대한 제재도 강화될 방침이다. 공정위는 9월 25일 과거 5년간 입찰담합으로 받은 벌점누계 5점을 초과하는 사업자가 다시 입찰담합에 적발될 경우 공공부문에 입찰참가자격을 최저 1개월 최고 2년까지 제한할 방침이라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과징금 1회(2.5점), 고발 1회(3점)를 받은 사업자(5.5점)가 다시 입찰담합 한 경우, 공정위의 입찰참가자격 제한 요청 대상이 된다. 지난 9월 기준으로 입찰참가제한조치 적용대상이 된 업체는 17개이다. 또한 공정위는 10월 9일 기획재정부, 조달청과 함께 공공분야 입찰담합 적발 업체에 대해 전체 사업대금의 10%를 강제로 배상토록 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입찰담합으로 인해 물가상승 및 국가예산낭비가 이뤄지고 있다”며 “앞으로 현실적이고 강화된 제재안 마련을 통해 부정거래를 방지하겠다”고 전했다. 고승주 기자 gandhi55@sisakorea.kr <저작권자 ⓒ 시사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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