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국가 최고지도자의 일거수일투족은 온 국민의 주시 대상이다. 언행에는 신뢰가 뒤따라야 한다. 신뢰란 국민만을 위하는 자세로 민심에 귀 기울여 정책을 펴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사리가 이러한데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 말 지도력의 공백, 곧 ‘레임덕의 수렁’에 급격하게 빨려 들어갈 것으로 우려된다. 정치권의 다수 예상과 달리 윤석열 검찰총장이 제기한 징계 집행정지 신청이 서울행정법원에서 24일 인용되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과거 역대 대통령들이 집권 4년 차에 대형 사건이 터지면서 레임덕에 빠졌다면 이번에는 검찰 개혁에 대한 과도한 드라이브가 되레 발목을 잡으면서 권력 누수가 시작될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검찰 개혁 과한 드라이브 ‘자충수’
특히 최근 들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에 따른 지지율 이탈이 심각한 가운데 검찰 개혁의 명분까지 흔들리면서 집권 후반기 국정 운영의 동력이 급격히 떨어질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윤 총장이 제기한 정직 2개월 집행정지 신청에서 법률상 피고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윤 총장 징계안을 재가하면서 정치적으로는 문 대통령과 윤 총장 간 대결로 ‘판’이 커져버렸다. 실제 정치권에서는 문 대통령이 지난 16일 윤 총장 징계안을 재가한 시점부터 ‘추 장관, 윤 총장’ 간 갈등이 아닌 ‘문 대통령, 윤 총장’의 대결로 해석됐던 터이다. 사실 법무부가 징계의 타당성을 강조하기 위해 내세웠던 근거가 ‘부메랑’으로 돌아오면서 문 대통령이 짊어져야 하는 정치적 부담도 커졌다. 추 장관 측은 이번 징계가 ‘문 대통령의 적법한 권한 행사에 따른 것’이라는 점을 강조해왔기 때문이다. 그동안 추 장관 측은 ‘최고 통치권자’에 의해 징계 효력이 발생했다며 징계에 당위성을 부여해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법원이 윤 총장의 손을 들어주면서 ‘무리수 징계’라는 정치적 화살이 문 대통령에게 꽂히게 된 아이러니한 상황에 이르렀다.이번 심문이 본안 소송에 준하는 수준으로 엄정하게 이뤄졌다는 점도 치명적이다. 이번 심리에서 본안 소송의 쟁점인 징계 사유의 정당성, 징계 절차의 적법성 등에 대한 검토도 이뤄졌기 때문이다. 결국 광범위한 검토 끝에 징계 사유가 부당하다는 결론에 이르러 사실상 징계 ‘무효화’ 결정이 내려진 상황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윤석열 검찰총장의 직무 복귀 다음날인 25일 “법원 결정을 존중한다”면서 “국민들께 불편과 혼란을 초래하게 된 것에 대해 인사권자로서 사과 말씀을 드린다”고 밝힌 건 ‘문 대통령, 윤 총장’의 대결로 해석된 바와 궤를 같이한다고 하겠다. 문 대통령이 사과 메시지를 낸 것은 지난 1월 추미애 법무장관 취임 이후 법무부와 검찰 간 갈등으로 인한 국론분열과 민심이반 사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정부는 두 차례의 윤 총장 직무배제 무효 결정과 조국 전 법무장관 부인 정경심 교수 유죄 판결 등으로 검찰 독립성과 중립성을 훼손했다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윤석열 찍어내기’에 매몰된 결과 검찰개혁의 명분까지 퇴색했다. 향후 출범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대한 불신도 커질 게 불 보듯 훤하다.
변 후보자 ‘지명 철회’ 국정 풍향계
징계·재가 책임이 있는 추 장관과 문재인 대통령으로선 정치적 타격이 불가피해졌다. 검찰개혁을 내세워 윤 총장의 ‘옷을 벗기려’ 했던 추 장관은 온갖 무리수를 두고도 완패해 명분과 실리 모두 잃은 꼴이다. 문 대통령은 리더십에 큰 상처를 입게 됐다. 지난 21일 여론조사 결과 “윤 총장 사퇴는 불필요하다”는 응답은 54.8%로 과반이었다. 문 대통령으로선 민심과 동떨어진 윤 총장 징계를 ‘방조’한 데 따른 정치적 부담을 떠안게 됐다. 후폭풍이 크면 국정 주도권이 흔들리면서 레임덕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문 대통령으로 상징되는 여권의 추후 선택이 주목된다. 사의를 표명한 추 장관의 사표 수리와 자격 논란을 빚은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 지명 철회가 국정운영 방향을 가늠할 시금석이 될 것이다. 지도자는 본인에 대한 반듯한 몸가짐도 중요하지만 자신 주변의 참모 등에 대해 상벌을 분명히 해야 한다. 기강과 질서, 법치 확립이 가능하다. 한비자가 지혜로운 군주에 관해 “명분에 합당하고 사실이 일치하면 은혜를 베풀고, 사리에 어긋나고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벌을 내려야 한다.(當名合實惠慈恩 逆事違言該命卒)”고 강조한 바를 새겨야 할 것이다. 황종택·칼럼니스트 <저작권자 ⓒ 시사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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