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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땅의 법도란 무엇인가. 질서와 덕성이다. 질서는 법(法)으로 유지되고, 덕성은 인간 존엄성을 구현한다. 중국 전국시대, 맹자는 인의를 최고 가치로 여겼다. 반면 통일제국의 초석을 다졌다는 진(秦) 효공 때 재상 상앙은 법을 최고 기준으로 삼았다. 예컨대 맹자는 성선설에 입각해 처벌 대신 불법을 저지르게 되는 원인을 찾고 교육하는 입장이다. 상앙은 입장이 다르다. 법으로 처벌해야만 공동체의 질서 유지가 가능하다고 보았다. 상앙은 맹자가 말하는 인정을 베푸는 방식의 한계가 있다고 지례 짐작했다.
대화 실종된 채 쟁점법안 등 통과
상앙이 법치에 대한 백성의 신뢰를 얻기 위해 사용한 ‘이목지신(移木之信)’ 고사는 오늘에도 가르침을 준다. 그는 세 길 정도 되는 나무를 도성 저잣거리의 남쪽 문에 세우고 백성을 불러 모았다. 그러고는 이 나무를 북쪽 문으로 옮겨 놓는 자에게는 십금(十金)을 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백성들은 이상히 여겨 그 누구도 옮기지 않았다. 그러자 다시 오십금을 주겠다고 했다. 누군가 나무를 옮겼고 상앙은 그에게 돈을 주었다. 백성들은 그 뒤로는 상앙이 공표한 법을 믿게 됐다. 이후 점차 세세한 법까지 제정됨에 따라 백성들의 불만이 많아졌지만 상앙은 효공의 지원 아래 밀어붙였다. 그러나 권력의 원천이었던 효공이 죽자마자 그는 자신이 만든 법 가운데 모반죄로 몰려 거열형(車裂刑)에 처해졌다. 순리에 의한 법치(rule of law)가 아니라, 법을 빙자한 통치(rule by law)가 부른 자승자박의 말로였다. 법은 공동체 질서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담보 장치다. 매사를 법으로 규제할 순 없다. 인간 양식에 의거한 도덕률이 필요한 이유다. 인간 사회에 법과 도덕이 다 필요한 것이다. 법이 없다면 힘센 자가 지배하는 약육강식 사회로 전락하고, 사랑과 덕이 없이 법치의 칼만 휘두르면 국민의 원성만 더 커질 따름이다. 이런 현실에서 근래 우리 사회는 법률 제·개정을 놓고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예컨대 야당의 비토권을 무력화하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개정안 통과로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야당 몫 추천위원 찬성 없이도 공수처장 후보 추천이 가능해졌다. 민주당은 곧 후보추천위원회를 재소집해 공수처장 후보 2명을 선정하는 등 공수처 출범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공수처는 중립성·독립성이 담보된다면 필요하다고 본다. 하지만 공수처법 처리 과정은 의회민주주의를 부정하는 다수의 횡포로 점철됐다. 야당의 비토권을 없앤 것은 심각한 문제다. 정권이 선택한 사람이 공수처장이 돼 검찰이 수사 중인 현 정권 관련 사건을 모두 가져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공수처의 공정성과 중립성을 기대할 수 없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여타 쟁점법안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됨에 따라 정국은 격렬한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다. 경찰청법 개정안과 ‘기업규제 3법’(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 개정안), 세월호 특조위 활동기간을 연장하는 사회적참사진상규명법, 5·18 역사왜곡처벌법 등 120여개 안건을 통과시켰다.
힘 있고 가진 자들 솔선수범해야
쟁점법안 처리 과정에서 여·야 대화와 타협이라는 의회 민주주의의 원칙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우리 정치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지 개탄스러울 따름이다. 문재인 대통령 국정운영과 민주당에 대한 지지율이 최근 추락하고 있다. 부동산 정책 실패, 법무부·검찰 갈등이 주요 원인이지만, 입법 독주 등 여권의 독선도 적잖은 몫을 하고 있다. 졸속·위헌 논란이 적지 않은데도 힘의 논리를 앞세운 막무가내 입법을 계속할 경우 문재인정부에 대한 민심 이반은 가속화할 것이다. 만사 법 준수는 힘 있고 가진 자들이 솔선수범해야 한다. 제갈량의 말을 귀감으로 삼자. 그는 법치를 하되 ‘먼저 강한 자부터 다스려야 한다(先理强 後理弱)’며 “나라는 큰 덕으로 다스려야지 작은 은혜나 베푸는 것으로 해서는 안 된다(治世以大德 不以小惠)”고 강조했다. 법치는 당연한 것이지만, 법이란 절대적인 게 아니라는 법정신을 뜻하고 있다. 그렇다. 법에 의한 합리적인 정치가 요청된다. 한심한 건 제1 야당 국민의 힘이다. 여당이 입법 폭주를 하는데도 야당은 역할을 못하고 있다. 극우적 성향과 내부 반목의 사분오열! 여당 탓만 하지 말고 야당은 해쳐 모여야 한다. 그래야만 수권 대안정당을 꿈꿀 수 있지 않겠는가. 황종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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