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시사춘추] 공수처, ‘연내 시간표’에 쫓겨서야

윤혜진 | 기사입력 2020/11/25 [22:26]

[시사춘추] 공수처, ‘연내 시간표’에 쫓겨서야

윤혜진 | 입력 : 2020/11/25 [22:26]

 

 

 

고위 공직자의 부정한 재산 모으기를 비롯한 범죄 행위는 사회 기본질서를 무너뜨린다. 관리의 부정 축재 역사는 짧지 않다. 조선에선 아예 부패한 관리를 낮도둑(晝賊)’이라고 불렀다. 명종, 선조 때의 문신이자 청백리인 이기는 함경도의 수령들이 가혹한 징수와 혹독한 형벌을 일삼아 낮도적이라 불렸다고 문집 송와잡설(松窩雜說)’에 실었다. 또 성균관에 대해선 조정에서 낮도둑을 모아서 기르는 곳(朝廷聚會晝賊而長秧之處)’이라고 기록했다고 다산 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 이를 인용하기도 했다.

 

 

2인 추천 못해 후보추천위 공전

 

백성 등골 빼먹는 공직자’, 국민은 더욱 고달파지게 마련이다. 개혁의 시급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다산의 외침을 들어보자. “탐학질하는 풍습이 노골화돼 백성들이 초췌해졌다. 털끝 하나인들 병들지 않은 게 없다. 지금 당장 개혁하지 않으면 나라는 반드시 망하고 말 것이다. 충신지사가 팔짱만 끼고 방관할 수만 있겠는가.”

지금이라고 다를까.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부러워하는 덴마크와 뉴질랜드, 핀란드는 국제 투명성기구에서 발표한 2018년 국가별 부패인식지수(CPI)에서 차례대로 1, 2, 3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대상국가 175개국 중 43위에 머물렀다.

상황이 이러하기에 여야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신설에 합의하고 초대 처장을 뽑기 위해 논의하고 있다. 고위공직자   가족의 비리를 중점적으로 수사·기소하는 독립기관이다검찰이 독점하고 있는 고위공직자에 대한 수사권·기소권·공소유지권을 이양해 검찰의 정치 권력화를 막고 독립성을 제고하고자 하는 취지로 추진됐다. 20191230일 공수처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그 설치 여부가 주목되고 있다.

한데 문제가 생겼다. 여야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초대 처장 후보 2인을 추천하지 못한 채 후보추천위가 공전(空轉)하고 있는 것이다. 박병석 국회의장의 중재로 여야 원내대표가 합의해 재소집된 25일 회의에서도 공수처장 후보 압축은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 이날 회의에선 10명의 후보 가운데 당연직(변협법무부법원행정처) 추천위원이 추천한 5명의 후보를 두고 표결했지만 6표 이상을 얻은 후보가 나오지 않았다. 추천위원들은 최종 추천 후보의 구성을 검찰 출신 2검찰비검찰 출신 각각 1비검찰출신 2명 등으로 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논의했지만, 합의엔 이르지 못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입법 독주라는 비판을 감수하고서라도 연내 공수처를 출범시킨다는 복안이다. 야당의 공수처장 후보 추천 거부권을 회수하는 개정안을 법사위에 상정한 뒤 다음 달 2일 본회의에서 처리한다는 방침을 재천명한 것이다. 야당은 공수처법이 위헌 소지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국회 보이콧을 포함한 강력 투쟁을 내비친 만큼 연말 여야 대충돌이 현실화할 공산이 크다.

 

집권세력의 정치도구 전락 우려

 

대통령 직속의 공수처는 입법부·행정부·사법부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대통령, 국회의원, 고위공무원 등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하는 막강한 힘을 갖는다. 공수처장의 정치적 중립성이 요구되는 이유다. 국회가 공수처장 후보를 추천하면 대통령이 임명하지만 실제로는 대통령과 여당의 입김이 크게 작용한다. 기존 공수처법에 야당의 비토권을 넣은 것도 공수처장이 정치권력에 휘둘리지 않도록 여야가 수긍할 만한 인사를 추천하자는 취지다. 이런 최소한의 안전장치조차 없으면 공수처는 집권세력의 정치도구로 전락할 것은 불문가지다.

애초에 공수처법을 강행 처리할 때 여당은 야당 비토권이 객관성을 담보한다고 했다. 그런 여당이 이제 와서 공수처가 출범하기도 전에 공수처법을 무력화하려는 건 국민에 대한 약속 파기다. 공수처장 적임자가 없으면 새로운 후보를 찾아서라도 여야 합의로 추천하는 게 법 취지에 맞다. 여당이 법 개정을 강행한다면 권력비리 수사와 비판세력의 입을 막으려고 무리하게 공수처 출범을 서둘렀다는 비난에 직면할 것이다. 물론 검찰개혁은 시대적 과제이고 공수처 출범을 통한 사정권력의 견제와 균형은 요청된다. 다만 연내 출범이라는 시간표에 쫓겨 악수를 둬선 안 된다. 여야 간 정쟁 대상이어선 안 된다. 여당의 책무가 더 크다. / 황종택·칼럼니스트

 

 

 

  • 도배방지 이미지

관련기사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