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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지금 마약과의 전쟁 중

총력분석/ 1600억원대 마약 사기왕 검거 내막

고승주 기자 | 기사입력 2011/06/28 [09:40]

한국은 지금 마약과의 전쟁 중

총력분석/ 1600억원대 마약 사기왕 검거 내막

고승주 기자 | 입력 : 2011/06/28 [09:40]
 
 [시사코리아=고승주기자] 최근 국내에서 사기를 친 밑천으로 마약에 올인한 국제 마약왕이 검거됐다. 검찰은 지난 6월 19일 남미에서는 마약을 매입하고, 국내에서 운반책을 모아 총 1600억원이 코카인을 유통한 혐의로 조모씨를 구속기소했다. 조씨는 주부 및 대학생들 일반인들에게 ‘금품을 운반해주면 돈도 주고 해외구경도 시켜주겠다’는 말로 속여 해외로 마약이 든 가방을 운반하게 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설령 속아서 마약을 운반했더라도 처벌을 피할 수 없다며 이번 사건을 통해 일반인들도 경각심을 가질 것을 촉구했다.
 
 
▲     © 운영자

 
한국이면 감시 느슨해…세계 마약조직들 경유지로 활용
몰랐다고 해도 무용…무조건 징역·일부 국가에선 사형도 선고

 
베네수엘라, 브라질 동쪽에 위치한 나라 가이아나. 66년까지 영국령일 당시 기아나라고 불린 가이아나는 현재 남미의 프랑스령으로 되어 있으며 전체 국가의 80%가 열대우림인 고온다습한 나라이다.

지난 2004년 10월 평범한 주부 장씨가 가이아나를 찾게 된 것은 돈 때문이었다. 장씨는 조 모씨에게 20kg의 금 원석을 가이아나에서 프랑스로 운반해주면 수고비로 400만원을 준다는 제안을 받았다. 조씨는 장씨에게 자신이 귀금속을 운반하고 싶은데 1인당 가지고 갈 수 있는 귀금속의 양이 정해져 있다며 도와달라고 유혹했다.

가방을 열어 볼 수 없다는 것이 찜찜했지만 범죄도 아니고 쉽게 돈도 벌 수 있었으며 거기에 공짜 해외여행까지…. 조씨의 사탕발림에 넘어간 장씨는 가이아나 공항에서 자신을 기다리던 한국 남자에게 여행용 큰 가방을 건네받고 프랑스 행 비행기에 올라섰다.

그러나 장씨가 프랑스 오를리 공항에 내린 순간 장씨는 말도 통하지 않는 프랑스 경찰에 체포당했다. 조씨가 옮기라는 가방엔 옮기라던 금은 없고 대신 엄청난 양의 코카인이 나왔기 때문이다. 장씨는 훗날 당시 상황에 대해 “너무 놀라서 꿈인지 생시인지도 모르고 너무 황당했다”고 술회했다. 그러나 놀랐을 때는 이미 늦었다.

장씨는 현지 법원에서 코카인 대량 밀수의 혐의로 징역을 선고받았다. 프랑스에서 비행기로 8시간을 날아간 장씨는 대서양의 외딴섬인 마르트닉섬 교도소에 수감됐다. 장씨는 마르트닉섬에서 1년 6개월을 복역한 후에야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귀환은 국제적 범법자로서의 귀환이었으며 장씨의 인적사항은 평생 국제적 범죄자로서 인터폴 마약수사 데이터베이스에 남게 된다.
 
조씨의 정체는 국제 적색 수배범
 
장씨를 꼬드긴 조씨의 정체는 바로 남미 마약 카르텔의 주요 인물 중 하나였다. 지난 19일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부장검사 김희준)는 한국인 운반책을 이용해 남미에서 유럽으로 코카인을 밀수한 조씨(59)를 마약류불법거래방지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조씨가 마약의 세계로 빠져들게 된 것은 지난 1980년대이다. 조씨는 선박냉동기사로 가이아나, 브라질과 국경을 맞닿고 있는 수리남으로 파견됐다. 수리남에서 8년간 체류하면서 조씨는 수리남의 사람들과 인맥을 쌓아갔다.

당시 남미 마약카르텔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던 시절이었다. 이 블루오션에 한 숟갈 얹고 싶었던 조씨는 마약조직들과 접촉하는 한편 수리남의 고위층과도 만나서 인맥을 넓혔다. 심지어 이 중에는 데시 보우테르세(65) 수리남 대통령과도 친분을 쌓았다고도 알려졌다.

1994년 국내로 돌아온 조씨는 빌라건축을 빌미로 10억원, 당시 미화 100만달러에 해당하는 돈을 을 수리남으로 도주했다. 조씨는 국내 수사망을 피하기 위해 한국국적을 버리고 수리남 국적을 취득했다. 그리고 기존에 맺어둔 한국, 수리남, 유럽인의 인맥을 모아 남미 마약카르텔과 연계한 뒤 대형 마약조직을 만들었다. 이 모든 변화는 겨우 1년 밖에 걸리지 않았다.

조씨는 한국과 현지에 밀수 조직을 구축, 현지에서는 마약 구입을, 한국에는 운반책을 모집하는 피라미드 조직을 만들었다. 이를 위해 조씨는 수리남에 체류 중인 한국인을 먼저 운반총책으로 모집한 뒤 “보석 원석을 운반하면 400∼500만원을 주겠다”고 속이는 방법으로 한국에서 운반책들을 모집했다.

이렇게 모인 사람들은 모두 결혼준비 여성, 미용실 종업원, 주부, 대학생, 조경기술자, 용접공 등으로 외국 여행에 지장이 없도록 전과가 없고, 형편이 궁핍하며, 해외사정을 모르는 서민들이었다. 조씨는 운반책을 포섭하기 위해 국내에 아예 인력 송출회사까지 설립하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운반책들은 조씨의 지시에 따라 항공편을 통해 프랑스·네덜란드 등으로 이동하며 코카인이 든 가방을 나르다가 일부는 현지 공항에서 적발되었다. 이들은 아무것도 몰랐지만, 1년 6개월, 길게는 5년까지 옥살이를 해야 했다.

조씨의 행각에 촉각을 곤두세우던 국내 검찰은 2005년 인터폴에 적색 수배를 의뢰했다. 적색 수배(Red notice)란 인터폴이 발동하는 청, 녹, 황, 흑, 적 등 5단계 수배유형 중 최고 단계로 살인, 사기, 마약 등 최고 중범죄 혐의자에 대해 발효되는 국제 수배령이다. 적색 수배된 범죄자에게는 포상금이 걸리고, 범죄인 인도조약이 체결된 국가의 경우 신병을 수배국에 넘기게 되고 미체결 국가는 해당국 재량에 의해 수배국에 신병을 인도할 수 있다.

인터폴이 적색 수배를 내렸지만, 조씨는 수년간 인터폴의 수사망을 피해갔다. 그러자 검찰은 2009년 7월 추가 범행을 위해 중국으로 간 조씨를 브라질로 유인, 현지경찰로 하여금 검거토록 했다. 이어 검찰은 범죄인인도조약에 근거, 법무부를 통해 브라질의 범죄인 인도결정을 이끌어내고 국내로 압송, 최근 구속 기소했다. 그 과정에서 조씨가 밀수했다고 밝혀진 코카인만 하더라도 무려 1600억원 규모, 그동안 국내에서 적발된 코카인 밀수 중 최대 규모이다.

검찰 관계자는 “중국발 대량 밀수사범, 한국인 운반책 이용 외국인 사범 적발 사례는 있었지만 외국국적 취득 후 국제마약조직을 구축, 마약밀수를 일삼은 대형사범 적발은 처음”이라고 전했다.

현재 검찰은 암거래에 이용된 12명의 운반책 신원을 밝혀냈지만, 프랑스 경찰이 검거한 운반책이 100여장의 여권 사본을 갖고 있던 점 등으로 미뤄 범행에 동원된 운반책이 더 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한국 마약 경유지로 급부상
 
조씨의 범행은 그 규모나 수법면에서 사람들을 크게 놀래켰지만, 사실 국내 마약 사건들을 되짚어 보면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지난 2008년 한국여성들을 이용해 전세계적으로 마약을 유통시킨 프랭크 파 두목 O.C.프랭크 친두가 검거, 무기징역과 벌금 1억원을 선고받았다.

프랭크 친두는 한국어, 영어를 포함 8개국어를 유창하게 하며 사업가로 위장, 이태원 등지에서 젊은 국내 여성들에게 접근해 공짜로 유학, 여행을 보내주겠다며 조씨처럼 단순 운반책으로 써먹었다. 프랭크 친두는 범행을 위해 범행을 저지르기 4년 전부터 한국에 들어와 외국어학당을 다니며 한국어를 배웠고, 사전에 범행대상을 물색하는 등 치밀한 사전 계획을 펼쳤다.

또한 최근 인천지검 강력부가 구속기소한 나이지리아 국제 마약밀수조직의 국내 총책 A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A씨와 조직원들은 이태원과 강남등지를 다니며 영국인이나 미국인 사업가 행세를 하며 한국인 여성들을 유혹했다. 조직원들은 유혹한 여성과 결혼을 하거나 애인관계를 맺은 후, 필로폰이 든 가방을 다이아몬드나 금괴가 들어 있다고 속인 뒤 적발되더라도 벌금만 내면 된다고 안심시켰다.

어째서 마약 청정국인 한국이 국제마약조직들의 주목을 사게 된 것일까.

한국은 1970년대 이후 마약관련법을 개정하면서 단순 소지범까지 처벌의 수위와 범위를 크게 늘렸다. 거기에 1990년대 중반, 검찰은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국내 마약 제조 조직을 일망타진했다.

덕분에 한국은 2000년대 들어와 마약청정국으로 인정받게 됐고, 덕분에 한국 국적의 배와 비행기는 타국에 비해 비교적 느슨한 세관의 검사를 받았다. 게다가 한국은 지리적으로 동남아시아국가들이 일본과 미국으로 향하는 진출로이기도 하며, 동시에 중국, 동남아 지역과 형성되는 무역규모가 커 항구를 드나드는 정기화물편의 수도 많다. 마약유통에 있어 한국이 가지는 중요성이 커지면서 미국 마약 단속국(DEA)은 2002년 보고서를 빌어 “한국은 주요제조국은 아니지만, 경유하는 마약은 점점 늘어가는 추세”라고 지적한 바 있다.

실제로 올 들어 관세청이 4월까지 적발한 마약류는 12.9kg, 시가는 총 363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무게는 3.4배, 금액은 6배나 늘었다. 윤영선 관세청장은 이에 대해 “과거에는 개인이나 유학생을 통한 소량 밀수였지만, 지금은 국제범죄조직에 의해 대규모 마약 밀반입이 일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몰랐다고 해도 적발되면 중형
 
이에 따라 마약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반인들도 충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다. 전 세계적으로 마약은 소지를 할 경우만도 중범죄에 해당하며, 현행범으로 취급돼 바로 그 즉시 체포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속아서 소지하게 된 경우건, 초범인 경우건 마약사범은 무조건 실형을 선포하게 되어 있으며 집행유예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처벌 또한 가혹해 마약사범은 섬처럼 격리된 지역의 교도소에 수감되기 일쑤이며, 중국같은 경우 형법 347조에 의거 헤로인 50g, 혹은 아편 1kg을 제조, 운반, 판매, 소지만 한 경우에도 동기와 관계없이 사형에 처할 수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도 사형을 선고하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일부 참수형을 선고한 판례도 발견된다.

검찰은 “마약인지 몰랐다 해도 해외에서 적발되면 중형에 처해진다”며 “공짜로 해외 여행을 보내주겠다는 등 물건 운반 대가로 금품을 제공하려 하면 마약인지 의심해 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고승주 기자 gandhi55@sisa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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