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 메이커] 모두의 뇌리서 소환되는 '사망설' 정태수... 몸값만도 2200억원(?)

사망 생존 확실한 물증은 없으나 아들 한근씨 체포 과정서 입수한 '사망증명서' 신빙성

김재순 기자 | 기사입력 2019/06/25 [15:05]

[뉴스 ☆ 메이커] 모두의 뇌리서 소환되는 '사망설' 정태수... 몸값만도 2200억원(?)

사망 생존 확실한 물증은 없으나 아들 한근씨 체포 과정서 입수한 '사망증명서' 신빙성

김재순 기자 | 입력 : 2019/06/25 [15:05]

▲ 두바이에서 체포된 정태수 전 한보그룹 총회장의 넷째 아들 한근씨. (사진=jtbc)     © 김재순 기자

 

정태수 전 회장의 넷째 아들 정한근(54) 씨가 지난 6월 21일 도피 21년 만에 두바이에서 검거돼 그 이튿날 인천공항을 통해 국내 송환되면서 세간은 다시금 '한보사태 정태수'를 모두의 뇌리에서 소환하기 시작했다.

 

정 전 회장의 아들인 한근 씨는 1998년 한보그룹 자회사인 동아시아가스를 운영하면서 322억 원의 주식 매각자금을 빼돌린 혐의 등으로 검찰 수사를 받다 잠적했었다. 정 씨는 국내 송환 후 검찰에 ‘아버지가 지난해 에콰도르에서 사망했다’고 진술했지만 정 씨의 진술만으로 정 전 회장이 사망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을 것이란 추정이 파다하다.

 

일단 한보그룹 전 총회장 정태수씨가 해외도피해 살아있을 것이라는 점은 가정법이다. 체포된 그의 아들의 진술을 100% 신뢰하기도 어렵지만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정 전 회장이 생존해있다고 단언할 입장도 아니다. 22일 인천 공항에 도착한 정씨는 바로 중앙지검에 가서 조사를 받았다. 오랜 도피생활 이후 체포된 상황에서 오는 심리적 공황감 등으로 제대로 진술을 확보하기 어려운 점도 관과할 수 없는 부분.


우리 나이로 96세에 이르는 고령인데다 건강상태도 의문인 점에서다. 재판을 받을 당시에만 해도 그는 썩 건강상태가 좋은 모습은 아니었던 것으로 대부분 기억한다.

 

2200억원이 넘는 세금을 체납하고 있는 상태인 정 전 회장.  전 한보그룹 회장으로,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촉발한 ‘한보사태’의 장본인이다.

 

'한보사태'는 지난 1997년 1월 발생한 한보철강의 부도와 이에 관련된 권력형 금융부정 및 특혜 대출비리사건을 총칭한다. 즉 1997년 1월 한국의 재계 서열 14위이던 한보그룹의 부도를 발단으로 이와 관련된 권력형 금융 부정과 특혜 대출 비리가 드러났는데, 이러한 일련의 사건을 말한다. 당시 '건국 후 최대의 금융부정 사건'으로 기록됐었다.

 

한보가 부도 나기 전에만 해도 당진철강은 꽤나 잘 나가는 회사였던 것으로 많은 사람들은 기억한다. 어림으로 5조원에 이르는 이 철강회사가 충남 당진에 지어지면서 당진은 물론이고 중부권 일대의 경제가 금방이라도 활황을 맞은 듯 '넘쳐나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사건의 발단은 한보가 부도를 내면서 불거졌다.

 

인근 지역에 경제활황을 가져다주었는지는 모르나 회사 자체로는 부실 대출의 규모가 5조 7000억여 원에 달하는 엄청난 액수라 온 나라가 술렁거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사건이 전 국민적인 관심을 모은 것은, 정태수 당시 한보그룹 총회장이라는 한 기업인과 관련하여 천문학적 금액을 대출하는 과정에서 정계와 관계, 금융계의 핵심부가 서로 유착하면서 엄청난 부정과 비리가 행해졌다는 사실이 세간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한보그룹은 1990년 건설 초기이후 정부 차원의 견제를 받은 일이 전혀 없었고, 오히려 건설부가 부지매립 허가를 9개월 만에 내주었던 것으로 드러났었다. 철강업계에서는 한보의 경영능력으로는 이 프로젝트의 실행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이었음에도 1조 원 규모의 코렉스 설비를 도입, 계속 철강사업을 진행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처음에는 제철소의 투자비를 2조 2800억 원으로 책정했으나, 2년 만에 5조 7000억 원으로 불어났다. 이러한 액수는 한보철강이 1994년 말 산업은행 주도로 11억 2900만 달러의 외화를 대출받은 이듬해부터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한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대출금은 다시 1995년에 1조 4300억 원, 1996년에 2조 원으로 늘어났는데, 이는 정부와 채권은행단이 한보측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투자비를 계속 지원했기 때문이란 것이다. 한보는 이 와중에도 18개의 회사를 인수하거나 설립하는 등 계속해서 사업을 확대하고 있었다.

 

결국 은행들은 한보철강에 거액을 물릴 수밖에 없었다. 당시 금융계는 사업의 타당성에 대한 상세한 검토 없이 외압에 따라 대출을 결정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수사당국의 표적화 했다.

 

실제로도 3개의 시중은행이 사업에 대한 타당성을 검토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또 은행감독원 등 금융감독기관도 동일인 여신한도를 넘어선 한보철강에 대한 제일은행의 편법 지원에 대해 아무런 제재를 가하지 않고 가벼운 문책만 함으로써 감사원의 지적을 받기도 했다.

 

이후 수사 과정에서도 한보 부도와 관련한 각종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세간에서는 '정권에 밉보인 기업이 표적이 돼 넘어간 희생양이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어쨌든 1997년 5월, 이 사건으로 인해 정태수 한보그룹 총회장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공금횡령 및 뇌물수수) 혐의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고, 이후 6년 실형을 살고 특별사면으로 풀려났다.

 

한보로부터 돈을 받은 정치인과 전직 은행장 등 10명이 징역 20~5년을 선고받았는데, 이 역시 빙산의 일각이라는 평가와 함께 시간 속에 묻혀버렸다.

 

이 사태가 발생하면서 제철소가 있는 충청남도 당진 지역은 '잘 나가던 때가 언제였나' 싶을 정도로 부도 여파로 인해 171개의 영세업소와 외상 거래자들이 빈 손이 되었고, 국가 대외신용도가 급격히 하락해 국가 경제가 막대한 손실을 입게 되었다. 또 금융계에도 여파가 크게 미쳐 시중은행장들이 쫓겨나거나 구속되었다. 이른바 1998년 단군이래 최악의 'IMF 금융위기'를 부른 원흉의 하나로 지목되기도 했었다.

 

국회에서는 한보사태 국정조사특별위원회가 열려 58명의 증인과 4명의 참고인이 채택되었으며, 이른바 '정태수 리스트'에 오른 정치인 33명이 소환되어 조사를 받았다. 또 당시 김영삼(金泳三)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金賢哲)과 국가안전기획부(국가정보원) 운영차장 김기섭(金己燮) 역시 이 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됐다. 또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를 해야 했다.

 

국세청 세무공무원으로 출발한 정태수씨. 뒤늦게 1974년 52세의 나이로 한보상사를 설립했다. 창업 2년 뒤인 1976년 ‘한보주택’을 설립한 뒤 서울 대치동에 은마아파트를 건설하면서 큰 부를 축적했고, 1980년에는 ‘한보철강’을 시작하면서 한보그룹을 대기업 반열에 올려놓았다.
  
하지만 무리한 사업 확장이 화근이었다. 한보철강은 1997년 1월 부도를 맞았고, 이는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금융 위기의 발단이 됐다. 당시 한보그룹이 은행권 등에서 받은 대출 규모는 약 5조 원이었는데, 사실상 부실기업이었던 한보그룹이 이 같이 큰 규모의 대출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정관계 고위 인사 등에게 각종 로비를 하면서 가능했던 것이었음은 사정기관의 수사가 진행되면서 속속 드러났다.
  
정 전 회장은 한보그룹 부도 후 1997년 9월 특정경제가중처벌법(특경법)상 횡령 혐의로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2002년 특별사면으로 출소했다.

 

그러나 자신이 이사장으로 있던 영동대학교 교비 72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다시 기소돼 2006년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2심 재판을 받던 중 암 치료를 받겠다며 일본으로 출국했고, 이후 12년간 종적을 감추면서 현재까지 행방과 생사가 가리워진 채 역사속으로 묻히는 듯했다.

 

당시 정 전 회장은 치료 목적으로 일본에 간다는 계획과 달리 말레이시아를 거쳐 카자흐스탄으로 도주했고, 검찰의 추적이 시작되자 다시 키르기스탄 등으로 옮겨가며 따돌려 온것으로 전해진다. 키르기스스탄에서는 금광 사업을 한다는 정보도 있다.

 

이후 법원은 정 전 회장이 불출석한 상태에서 재판을 계속 진행해 2009년 5월, 징역 3년6개월을 확정한 바 있다. 그래서 현재 정 전 회장은 '자유형 미집행자' 신분이다.

 

해외로 도피한 정 전 회장은 아직까지 2200억원의 세금을 체납한 상태다. 물론 그가 어디선가 사망했다는 사실이 확정되면 세금 체납 부분은 그대로 소멸된다. 때문에 그가 살아있다면, 그의 '몸값'은 2200억원에 이른다는 해석이 그래서 가능하다.

 

정 전 회장의 생사와 관련, 살아 있다, 죽었다, 이렇게 단정 지을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 

 

다만 이번에 송환된 아들 정씨가 체포된 곳이 두바이였고, 아버지는 에콰도르에서 사망했다는 진술 등을 종합해보면 아버지와 언제든 연락을 주고받을 위치에 있었을 아들 정씨이고 보면 해외 어디서건 살아있을 수 있을 것이란 추정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검찰은 아들 정씨의 조사 내용과 그간의 추적 내용을 종합해서 빠르면 이번 주 중 정 전 회장의 소재와 관련한 발표를 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편, 정태수 한보그룹 전 회장이 지난해 에콰도르에서 숨졌다는 내용이 담긴 사망증명서를 검찰이 확보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2200억원 체납 징수도 날아간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검찰은 지난 22일 강제 송환한 정 전 회장의 넷째 아들 한근씨의 진술을 종합해 정 전 회장이 실제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관련 증거를 수집하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외사부(부장 예세민)는 정씨가 송환 과정에서 파나마 당국에 압수당한 여행용 가방 등 소지품을 전날 외교행낭을 통해 건네받았다는 것이다.

 

외교행낭은 정부와 타국 주재 자국공관 간에 이동되는 수화물을 말하는데, 국제법상 주재국 정부나 제3국이 수화물 내용을 확인할 수 없다. 
   
정씨는 에콰도르 당국이 발급한 정 전 회장의 사망증명서와 키르기스스탄 국적의 위조 여권, 화장된 유골함 등을 정 전 회장의 사망·장례 증거로 제시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사망증명서에는 정 전 회장의 위조 여권에 기재된 이름과 같은 인물이 2018년 12월 1일 심정지로 숨졌다고 적혀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정씨가 에콰도르에서 미국으로 주거지를 옮기는 과정에서 화장된 유골함도 함께 챙긴 것으로 보고 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한보 정 전 회장은 불과 수개월여 전까지만 해도 생존해 도피행각을 벌였다는 얘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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