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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의 나라에 살고 싶다"

성혜미 기자 | 기사입력 2019/02/09 [18:16]

"할아버지의 나라에 살고 싶다"

성혜미 기자 | 입력 : 2019/02/09 [18:16]

▲ 1863년 조선 철종 때 농민 이주자를 시작으로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의 망명 이민자로 구성된 고려인들이 연해주에서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등 서쪽 변방의 불모지로 강제 이주된 것은 스탈린의 대숙청 기간 때 였다. <사진 =고려인돕기운동본부 제공>    

 

일제 강점기 시절 조선민족부 책임자로 활동하며 조선공산당의 중요 인물인 김단야는 1938년 소련의 비밀경찰에 체포돼 밀정이라는 이유로 처형된다. 박헌영의 첫 부인으로 김단야와 재혼 한 주세숙도 비슷한 이유로 체포돼 5년간 카자흐스탄 유배형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일본 육사 출신으로 만주로 망명, 연해주 지역에서 항일 빨치산부대를 이끌던 김경천도 일본간첩이라는 누명을 쓰고 옥고를 치른 뒤 다시 체포되어 시베리아에서 유형 중에 사망했다. 이들의 죽음과 형벌은 지난 1936년부터 약 3년간 이뤄진 스탈린의 대숙청에서 비롯됐다. 1936년 이른바 스탈린헌법을 제정하고 난 직후 스탈린은 구 간부당원 등 수백만 명을 처형하거나 투옥, 유배 보내는 대숙청 작업을 단행했다. 이 기간에 정치범 50만 명, 무뢰배 48만 명을 포함해 170만 명이 총살당했다는 통계도 있다.

 

1863년 조선 철종 때 농민 이주자를 시작으로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의 망명 이민자로 구성된 고려인들이 연해주에서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등 서쪽 변방의 불모지로 강제 이주된 것도 이때다. ‘군국주의 일본과 공모해 소련을 해체시키려고 음모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들은 화물열차에 짐짝처럼 실려 중앙아시아 황무지에 내팽개쳐졌다. 강제 이주 대상은 고려인 175천명 가량으로 이중 11000여 명은 이동 중 숨진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고려인들은 강한 생명력을 바탕으로 중앙아시아의 황무지를 개척하고 한인집단농장을 경영하는 등 소련 내 소수민족 가운데서도 가장 잘사는 민족으로 뿌리를 내렸다.

 

그러다 19921월 소련이 붕괴되고 러시아 외에 11개 독립국가로 분리되면서 고려인들이 거주하는 국가에서는 배타적인 민족주의 운동이 확산된다.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이 독립하면서 중앙아시아의 고려인들은 살아가기가 고달파졌다. 고려인들은 직장에서 추방당하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됐다. 독립국가는 러시아어를 쓰지 못하게 했고 구소련과 관계된 것이라면 통제가 심했다. 지금까지 고려인들이 다른 동포와 달리 한국어가 서툰 이유다. 버려진 고려인들 중 상당수는 다시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고향인 연해주로 옮겨가야 했다.

 

2011년 한글야학을 시작으로 고려인 동포들의 정착을 지원해온 김영숙 고려인지원센터 너머 사무처장은 고려인은 러시아 말로 까레이츠, 한국인이란 뜻이다. 대부분 항잉투쟁, 의병 활동 등으로 구 소련의 연해주로 건너간 사람들이라면서 그리고 1937년 스탈린의 소수민족 분리정책에 따라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됐고 저항할지 모른다는 이유로 고려인 지도자 2600여명이 총살당했다. 이 과정에서 25천여 명의 동포가 굶어죽고 얼어죽고 병사했다. 그럼에도 고려인들은 학교를 만들어 2, 3세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아리랑을 부르며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려고 애써왔다고 밝혔다.

 

김 사무처장은 고려인들은 스탈린의 강제이주 정책에 의해 수만리를 이동해야 했고 생존을 위해 현지(러시아와 구소련 지역)에 동화될 수 밖에 없었다면서 특히 1991년 소련이 붕괴되고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 독립된 국가들이 자민족중심주의 정책으로 러시아어 대신 본국의 언어를 쓰게 되면서 고려인의 어려움은 커져만 갔다. 한국어 교육도 받지 못해 언어적인 문제가 심각하다도 설명했다.

 

그는 역사적으로 우리는 고려인들에게 부채 의식을 가져야 한다. 올해가 3.1운동과 임시정부 100주년이기 때문에 고려인을 완전히 외국인 취급하는 우리나라의 태도에 대해 많이 고민할 때라고 본다면서 단순히 이주노동자로 볼 게 아니라 고려인의 역사를 봐야 한다. 이들의 역사는 우리의 역사이기도 하고 항일투쟁의 역사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최근 법무부가 외국국적동포의 범위를 손자녀(3세대)에서 직계비속(4세대 이후)으로 넓히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재외동포의 출입국과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 시행령개정안을 입법예고 했다고 밝히면서 고려인 4세대도 법적으로 재외동포 지위를 인정받아 국내에 장기 체류할 수 있게 됐다.

 

김 사무국장은 이와 관련해 그 동안 재외동포법 때문에 3개월에 한 번씩 본국으로 돌아가 갱신을 해야 하고 여권을 발급받더라도 최소 1주일 이상 소요됐기 때문에 많이들 힘들어했다. 법무부의 이번 발표로 국내 고려인들이 너무 좋아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보완이 필요하다. 고려인들은 단지 '할아버지의 나라'에 살고 싶어하는 경우가 많다. 또 국내체류 고려인들은 자녀들에 대한 보육과 교육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다문화 가족의 경우 한국어교육 방문서비스까지 지원하는 반면 재외동포라는 이유로 한국어교육을 받지 못한다. 의료 문제도 시급하다. 고려인들은 가족 중 누가 다치더라도 의료보험과 산재보험 적용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어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고 했다. 단순히 가난한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라고 해서 냉대할 것이 아니라 한 민족임을 인식하고 동포적 관점에서 법과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영숙 고려인지원센터 너머 사무처장과 인터뷰>

 

법무부는 최근 <재외동포의 출입국과 법적지위에 관한 시행령>의 개정안을 입법예고 했다. 이 개정안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가.

=기존 재외동포법에 따르면 부모 또는 조부모 중 한 명이 대한민국 국적을 보유했던 자만 재외동포로 인정해왔다. , 고려인 3세는 대한민국 후손으로 인정했으나 4세는 외국인 신분으로 체류해왔다. 그러다보니 재외동포 비자(F4)를 못 받은 고려인4세는 단기관광 비자(C3)로 거주한다는 이유로 3개월 마다 한국와 본국을 왔다갔다 해야했다. 이 같은 문제점이 대두되자 지난해 한시적으로 부모와 함께 사는 고려인4세의 경우 체류 비자를 동반 비자로 발급하기도 했다. 사실 고려인 3세까지만 동포고 4세부터 동포가 아니라는 건 처음부터 논리가 이상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개정안으로 인해 불안정한 체류가 어느정도 해결됐다는 데에 의미가 크다.

 

개정안에 대한 고려인들의 반응은 어떤가.

=매우 환영하고 있다. 그 동안 재외동포법 때문에 3개월에 한 번씩 본국으로 돌아가 갱신을 해야 하고 여권을 발급받더라도 최소 1주일 이상 소요됐기 때문에 많이들 힘들어했다. 또 고려인4세는 재외동포법상 외국인에 해당돼 성인이되면 동반비자 기간이 만료돼 한국에 살고 있는 가족들과 생이별 해야 했다.

 

시행령 외 고려인이 한국에 정착륙하기 위해서는 어떤 조치가 필요한가.

=우선 취업제한이 완화되길 바란다. 현재 노동부는 중국에서 온 조선족을 비롯해 고려인 등에 단순노무에 대한 취업제한을 철폐할 경우 국내취업시장을 잠식할 우려때문에 취업을 제한하고 있다. 또 고려인은 중국에서 온 조선족과 달리 한국말이 굉장히 서툴러 가장 열악하고 장시간 저임금 일자리 밖에 못 구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 머무는 고려인은 굉장히 소수이며 단순노무 중에서 말이 필요 없는 직역에 종사하고 있어 취업경쟁이 발생할 가능성은 0.0001%.

더불어 고려인의 국내 체류를 위해 영주권(F-5)취득이 필요하다. 보통 외국인들이 노동이나 결혼을 위해 이주하거나 체류하는 것과 달리 고려인들은 단지 '할아버지의 나라'에 살고 싶어하는 경우가 많다. 또 국내체류 고려인들은 자녀들에 대한 보육과 교육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다문화 가족의 경우 한국어교육 방문서비스까지 지원하는 반면 재외동포라는 이유로 한국어교육을 받지 못한다. 의료 문제도 시급하다. 고려인들은 가족 중 누가 다치더라도 의료보험과 산재보험 적용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재중 동포, 흔히 말하는 조선족과 달리 고려인은 왜 한국어가 서툰가.

=고려인들은 스탈린의 강제이주 정책에 의해 수만리를 이동해야 했고 생존을 위해 현지(러시아와 구소련 지역)에 동화될 수 밖에 없었다. 특히 1991년 소련이 붕괴되고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 독립된 국가들이 자민족중심주의 정책으로 러시아어 대신 본국의 언어를 쓰게 되면서 고려인의 어려움은 커져만 갔다. 한국어 교육도 받지 못해 언어적인 문제가 심각하다.

 

고려인에 대한 인식이 '이방인'이란 시각이 강하다.

=고려인은 러시아 말로 까레이츠, 한국인이란 뜻이다. 대부분 항잉투쟁, 의병 활동 등으로 구 소련의 연해주로 건너간 사람들이다. 그리고 1937년 스탈린의 소수민족 분리정책에 따라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됐고 저항할지 모른다는 이유로 고려인 지도자 2600여명이 총살당했다. 이 과정에서 25천여 명의 동포가 굶어죽고 얼어죽고 병사했다. 그럼에도 고려인들은 학교를 만들어 2, 3세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아리랑을 부르며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려고 애써왔다. 반면 조국을 그리며 일제와 독립운동을 하고 강제이주로 핍박 받은 동포를 과거에는 좌우 이념으로 '적국의 사람들'이라며 배척했고 지금은 '못 사는 나라 출신', '외국인 노동자' 등 갖가지 편견과 오해로 바라보고 있다. 고려인들은 불안정한 체류로 인한 불안감과 언어 문제로도 힘들어하지만 한국 사람들이 자신들을 외국인으로 취급하는 데 따른 위축감도 크게 느낀다.

 

한국에 안정된 정착을 위해서는 특별법 제정은 물론 인식개선이 필요해보인다.

=우리는 고려인들에게 역사적 부채 의식을 가져야 한다. 올해가 임시정부 100주년인 만큼 고려인을 단순히 이주노동자로 볼 게 아니라 고려인의 역사를 봐야 한다. 이들의 역사는 우리의 역사이기도 하고 항일투쟁의 역사이기도 하다.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고 했다. 단순히 가난한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라고 해서 냉대할 것이 아니라 한 민족임을 인식하고 동포적 관점에서 법과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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