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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전등화’ 앞에 놓인 현정은 회장…시름 깊어가네

현대상선 경영권 …분쟁 재점화

김희정 기자 | 기사입력 2011/04/04 [12:05]

‘풍전등화’ 앞에 놓인 현정은 회장…시름 깊어가네

현대상선 경영권 …분쟁 재점화

김희정 기자 | 입력 : 2011/04/04 [12:05]
범현대가와 현대그룹이 또다시 경영권 분쟁에 휩싸였다. 지난 3월 25일 열린 주주총회에서 현대상선이 상정한 우선주 발행한도 확대를 위한 정관 일부 변경의 건이 범현대가의 반대로 부결된 것. 이에 대해 현대그룹측은 “현대중공업의 현대상선경영권 장악의도가 드러났다”며 날을 세웠다.

현씨 가문에 현대 계열사 못 넘겨준다…현대가 의지 담겨
우선주 발행한도 확대 변경안…범현대가 반대로 주총서 부결

▲     ©운영자
 
현대그룹 관계자는 지난 30일 <시사코리아>와의 통화에서 “현대중공업 주도와 압력으로 범현대가가 조직적으로 반대해 승인에 실패한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그룹이 그룹의 사활을 걸었던 현대건설을 현대차그룹에 우선협상대상자 자리를 넘겨준 상황인데다 경영권 안정화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칠 현대상선 마저 위태한 상황에 놓여 현정은 회장의 리더십에도 흠집이 생길 수 있는 상황이다.

현대상선은 지난 25일 현대그룹 사옥에서 개최한 제 35기 정기주주 총회에서 우선주 발행한도를 현행 2천만주에서 8천만주로 확대하기 위한 정관 7조 2항의 변경안을 상정했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현대상선의 이번 우선주 발행 확대에 대해 선박투자 확대 등 긴급한 투자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투자재원 마련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날 정관 일부 변경의 건에 대해 현대중공업과 현대백화점이 주주가치 훼손을 들어 반대의사를 표함에 따라 투표에 들어갔다.

우선주 확대발행 목적 논란

30일 <시사코리아>와 인터뷰한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자사 그룹 재무 전문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투자자금으로 사용하려 할 경우 굳이 우선주가 아니라 보통주를 발행해도 되는 상황이다. 우선주 발행한도 확대가 주주 가치를 훼손할 우려가 있어 반대의견을 낸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또 “보통주 발행 한도가 1억2천만주나 남았다는데 굳이 우선주를 발행하려는 이유를 모르겠다. 현대중공업은 재무적 관점에서 판단하고 의견을 낸 것이므로 확대해석은 말아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대그룹측은 이번 안건의 부결 원인은 현대중공업그룹, KCC, 현대백화점, 현대산업개발 등 범현대가가 대거 참석해 조직적으로 반대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현대그룹은 “일부 주주들이 현대상선의 선박 등 투자를 위해 현대중공업이 반대의견을 철회할 것을 요청했지만 결국 표결에 들어갔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날 표결 개표결과는 64.95%의 찬성, 반대, 무효, 기권이 35.05%(4228만4647주)로 참석의결주식 3분의 2의 찬성표를 확보치 못하고 단지 1.7% 부족해 안타깝게 부결됐다.

현대그룹측은 주총 표결 결과를 분석한 결과 지분 23.78%를 보유한 주요주주인 현대중공업(현대삼호중공업 포함)을 비롯해 현대백화점(1.89%)·현대산업개발(1.31%)·KCC(4.00%)·현대해상화재보험(0.14%)이 일제히 반대·기권표를 던졌다고 밝혔다.

현대그룹측은 또 “현대중공업이 이번 정관 변경안에 대해 지난 23일 이미 사전에 반대표시를 하고 범현대가에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24일에는 이미 찬성 위임장을 제출했던 현대산업개발이 갑자기 위임장을 회수해 가는 등 조직적으로 반대 준비를 해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대그룹은 “현대중공업그룹 등 범 현대가가 지난해 말 현대상선 유상증자에 불참하면서 더 이상 경영권에 관심이 없는 것처럼 말했지만 이번 주총에서의 모습을 보면 역시 현대중공업은 현대상선 경영권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했음을 다시 한번 보여줬다”고 강조했다.

또 “아직 현대자동차그룹으로부터 아무런 화해에 대한 제안을 전혀 받지 못한 와중에 현대중공업그룹을 중심으로 한 범현대가가 현대상선의 정상적인 경영활동에 대해서 이렇게 제동을 거는 것은 범현대가의 현대그룹 장악의도가 드러난 것이다”며 “이렇게 되면 현대상선도 선박투자 등 미래 성장에 대한 투자에 제동이 걸리게 되고 이는 결국 회사의 경쟁력을 약화시켜 그 피해는 일반 주주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그룹 “범현대가 조직적으로 반대”

또한 현대그룹은 “지금은 범현대가와 진정한 화해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라며 “현대자동차그룹은 현대건설이 보유한 현대상선 지분 7.8%를 조속히 현대그룹에 넘겨야 하며 현대중공업그룹도 더 이상 말로만 ‘경영권에 관심없다’하지 말고 미래 성장을 위한 자본확충 노력에 동참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할 때”라고 촉구했다.

한편 현대상선 관계자는 “최근 머스크 등 경쟁업체들이 대규모 선박발주를 하고 있어 대한민국 해운사들이 대형화를 위한 투자 없이는 살아나기 힘든 상황인데도 현대중공업의 경영권 장악의도 때문에 현대상선이 선박투자시기를 놓치고 있다”며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 등 국내 유수의 기업들도 전체주식 대비 우선주 발행한도가 25%가 된다”고 지적했다.

현대상선의 경우에는 현재 7% 수준에 불과하며 이번 변경안이 처리됐어야 한도가 8천만주로 상향돼 우선주 발행한도가 다른 기업과 비슷한 수준인 25% 대로 올라간다.

현대중공업이 주장하는 주주가치 훼손에 대해서는 “우선주의 발행으로 기존 주주의 가치가 훼손된다면 법에서 이를 금지시켰을 것”이라며 “지난 2006년 상환우선주 발행 때는 기존주주 가치 훼손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안하고 참여했으면서 지금에 와서 문제 삼는 것은 넌센스다”고 지적했다.

또한 보통주 발행한도가 1억2천만주 남았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기업은 자금조달을 위해 보통주, 우선주, 회사채 등 여러 가지 자금조달 방식을 사전에 준비해야 함이 마땅하다”며, “보통주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고 이익배당이 많은 우선주를 선호하는 투자자도 많기 때문에 회사로서는 우선주 발행한도를 늘려놓음으로써 자본확충의 방법을 다양화하는 것은 당연하다”라고 일축했다.

한편 이날 주총에서는 5호의안인 이사보수한도 승인 건이 먼저 현대중공업의 반대로 표결에 들어갔다. 현대그룹측은 “현대중공업이 아무도 예상치 못하게 이사보수한도 승인까지 타 기업의 사례를 들어가며 반대를 하는 등 시종일관 신경전을 벌렸다. 결과는 찬성 64.31%, 반대, 무효, 기권은 35.69%로 과반수를 넘어 원안대로 통과됐다”고 전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시사코리아>와의 통화에서 “현대상선의 이사보수한도는 다른 어느 선박회사 보다 높다. 심지어 현대중공업보다 높은 수준이라는 점에서 반대입장을 전한 것일 뿐”이라고 전했다.

현대상선 분쟁 또 되풀이 왜?

양측은 이번 일이 현대가의 경영권 다툼으로 확대해석되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 ‘투자’와 ‘주주가치’를 논점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결국 속을 들여다보면 본질은 경영권 분쟁이다.

현대그룹은 기존 주식(보통주 1억4300만주)의 최대 55%까지 발행 가능한 우선주를 자신의 우호세력에 배정해 경영권을 확고하게 지키겠다는 의도가 숨어 있다. 범현대가는 그런 시도를 묵과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사표시를 한 셈이다.

이번 표 대결로 현대그룹 경영권 분쟁은 여전히 현대가에서 꺼지지 않은 불씨라는 점이 드러났다. 2004년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동생 정상영 명예회장이 이끄는 KCC그룹과의 1차 분쟁, 2006년 현대중공업이 현대상선 지분 27.7%를 전격 인수하면서 불거진 2차 분쟁에 이어 3차 분쟁이 언제든지 불거질 수 있다.

재계 일각에서는 이날 현대상선 우선주 발행을 둘러싼 표 대결은 3차 분쟁의 전조로 보는 시각도 있다.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동생과 아들을 일단으로 하는 범현대가가 현대상선을 중심으로 하는 옛 현대그룹 계열사를 현씨 가문에 완전히 넘겨주지 않을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계열사의 고위 관계자는 “정몽헌 회장이 돌아간 후 현 회장의 모친인 김문희 용문학원 이사장 등 현 회장 가문이 현대그룹 경영에 강한 영향력을 가지기 시작했다”면서 “현대가에서는 현대상선 등 현대그룹 주요 계열사가 현 회장 가문으로 넘어가지 않을까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현대그룹 경영권을 인수하지는 않더라도 정지이 현대유엔아이 전무 등 정몽헌 회장의 자녀들에게 현대그룹이 승계될 것이라는 확증이 있을 때까지는 강력히 견제하겠다는 것이다.

김희정 기자 penmoim@sisa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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