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2007년 제약회사와 시험기관의 복제약 생물학적동등성(생동성) 시험결과 조작사건을 수사하면서 “제약회사들이 조작에 관여했다”는 시험기관 관계자의 진술을 받아놓고도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는 주장이 최근 다시 제기되고 있다.
생동성시험 연구기관에 근무한 연구자가 검찰조사에서 제약회사의 묵시적, 암묵적 압력에 대해 발언한 내용이 언론을 통해 재조명되고 있는 것. 생동성 시험조작에 제약사들이 과연 조직적으로 개입했을까. 검찰 수사와 법원 판결의 개운치 않은 부분 ,<시사코리아>가 집중 조명했다.
생동성 시험기관에 대한 제약회사 압력 여부 ‘풀리지 않는 미궁’…시험기관만 배상판결 제약사 조작 관여한 시험기관 책임자 진술 묵살…건보, 제약사 상대 소송 줄줄이 패소 문제의 발단은 2006년 모 대학 약학연구소 연구원이 “광범위한 생동성 시험 조작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국가권익위원회에 제보하면서 촉발됐다. 국민권익위원회에 신고된 유명 사립대 약학연구소의 조직적 생동성 시험 데이터 조작 비리 사건은 식약청과 검찰 수사를 거쳐 신고 2년 반 만에 철퇴를 맞았다. 모 약학시험기관의 대표로 있던 전직 식약청장과 현직 대학교수 등 3명이 구속되고 또 다른 대학 교수 및 관련시험기관 연구원 등 모두 23명이 기소된 것. 권익위는 “이 비리는 대학 약학연구소에서 담당 교수 지시에 복종해야 하는 여건 하에 일어난 관행적이고 조직적인 비리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고 피력했다. 검찰 조사 결과 문제의 모 대학에서는 교수가 직접 학생에서 약효 조작을 지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생물학적 동등성 시험이란 생물학적 동등성 시험이란 특허 만료된 신약을 본떠 만든 복제약(제네릭)이 신약과 동등한 약효를 나타내는지를 증명하는 시험이다. 제약사들이 인가받은 사설 시험기관 등에 의뢰해 합격을 받으면 식약청이 약품의 품목허가를 내준다. 생물학적 동등성이 입증될 경우 제조과정이 다른 약이라도 약효가 동일하다고 보고 상호 대체 처방이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이에 제약업계는 동등성 평가를 받기 위해 시험기관에 부당한 로비를 하는 경우가 왕왕 발생했다. 당시 식약청은 약효시험에 문제가 있는 혈압강하제, 항생제, 무좀약 등 203개 품목에 대해 생산허가 취소와 재발방지를 위해 생물학적 동등성 시험기준 대폭 강화, 의약품의 안전성 및 유효성 심사에 관한 규정 개정, 임상시험관리기준에 준한 생동성 시험관리 강화, 약사법 개정을 통한 생동성 시험기관 지정 근거 및 위반시 벌칙 강화 등의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나섰다. 결국 식약청이 검찰에 이 사건을 넘기면서 203건에 이르는 의약품 허가가 취소됐다. 연루된 제약회사만도 94개사로 국내 거의 모든 제약사가 포함됐지만 기소된 제약사 관계자는 S제약 직원 1명뿐이었다. 이 직원의 경우도 생동성 조작 거래와는 전혀 상관없는 다른 시험기관과의 거래로 기소됐다. 약사들이 기소되지 않은 것에 대해 한 시험기관 관계자는 “검찰이 증거 부족으로 판단해 그렇게 한 것으로 아는데 자세히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제약회사만 살짝 빼고~ 당시 28개 제약회사와 거래하고 53건의 생동성 조작 혐의가 드러나 검찰 수사를 받은 의약품 시험기관인 L사의 생동성 시험 책임자였던 A씨는 검찰 진술에서 “제약회사들이 직원들을 시험기관에 수시로 보내 생동성 시험 진행상황을 파악했다”고 말했다. 그는 “시험 결과가 오리지널약과 다른 비동등으로 나올 경우 제약회사가 매출과 이익을 향유하지 못하도록 하는 압력을 행사하기도 했다”고도 주장했다. 심지어 “제약회사들에게 직접 (시험 조작과 관련한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시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에서 이 사건을 수사했던 최모 검사는 제약회사들의 관련 혐의를 적극 수사하지 않은 것에 대해 “기본적으로 시험기관들이 조작을 주도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어 “시험기관들이 (시험통과) 실적을 높여야 제약사들의 의뢰를 많이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제약회사들이 시험통과 실적이 높은 시험기관들을 찾았다는 것 자체가 조작을 알고 있었다는 뜻 아니냐는 질문에는 이렇다 할 해명을 하지 못했다. 왜 시험기관만 수사대상? 혹자는 검찰이 복제약의 생물학적 동등성 시험조작에 제약사들의 관여가 있었다는 진술을 받고도 제대로 수사를 하지 않은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보았다. 첫째, 검찰 수사과정에서 막강한 제약사들의 로비 가능성이다. 하지만 이 부분은 명확히 확인할 수 없는 의혹으로 남는다. 주임 검사였던 최모 검사는 수사의 적절성을 설명하며 “제약회사가 조작을 의뢰하면서 시험기관에 뒷돈을 줬는지를 확인해봤지만 나오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시험기관이 을의 입장이었고 제약회사가 적정한 시험비용도 제대로 주지 않았던 상황에서 제약회사의 면책 이유가 되기는 어렵다고 보았다. 둘째, 검찰이 자체 인지 수사한 사건이 아니고 94개 제약사가 걸린 방대한 사건이어서 애초부터 수사 대상을 시험기관에 한정하고 가지치기를 했을 가능성이다. 실제 서울중앙지검 형사부의 경우 특수부 등과 달리 새로운 혐의를 찾아 수사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최 검사는 수사가 부실했던 것 아니냐는 질문에 “제약회사들이 너무 많았다”고 말했다가 수사여력이 부족했다는 뜻인지를 재차 묻자 “그런 뜻은 아니다”고 얼버무렸다. 이에 시험기관 L사의 전 생동성 시험책임자였던 A씨는 제약회사의 관여를 주장하며 부당함을 호소했다. 제약사들이 시험 조작에 관여한 정황이 뚜렷한 데도 면죄부를 받으면서 제약사에 지급한 건강보험 약제비를 회수하지 못하고 제약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자인 시험기관 연구원들에게만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배상판결이 일부나마 내려지고 있다는 것이다. A씨는 재판부에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제약회사들은 생동성 시험의 전문성을 강조함으로써 자신들은 생동성 시험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고 관여사실을 부인하고 있다”며 “그러나 제약회사에는 약사를 비롯한 상당수의 제약 전문가들이 근무하고 있고 생동성 시험의 방법과 시험절차에 대해 매우 잘 알고 있다”고 밝혔다. A씨는 또 “제약회사들은 생동성 시험 1건당 약 5,000만원에 불과한 금액을 비용으로 지급했는데, 시험이 원칙에 따라 제대로 수행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라는 점을 제약회사들 스스로 더 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제약회사들이 생동성 시험조작에 대해 묵시적 또는 간접적 압박을 가했으며 이는 이미 형사사건에서 인정된 사실”이라고 말했다. A씨가 ‘묵시적, 간접적’ 압박이라고 했지만 사건의 내막을 알게 되면 직접적 압박과 큰 차이가 없다고 시험기관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이번 사건으로 기소돼 유죄 판결을 받은 피고인들의 판결문에 따르면 “조작해라”라고 직접적으로 말하는 것은 금기시돼 있었다고 한다. 시험기관 내부 관계자들조차 명시적으로 ‘시험자료의 조작’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고 제약회사와 거래관계의 단절 등을 이야기하면서 (오리지널약과) 비(非)동등 결과가 나오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들을 주고받았다. 또 유일하게 제약사 직원이 기소된 S제약 사건 판결문에는 “당시 직접적으로 시험데이터를 조작하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알아서 잘 해결하라’라고 간접적으로 지시했고, 분석연구원들은 ‘맞추래, 맞춰야지, 내가 뭐 힘이 있느냐’라며 조작을 했다”고 돼있다. 또 “제약회사에 잘 해주겠다고 약속을 하고 계약수주를 하였으니 혹 분석에 문제가 있더라도 잘 해주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수시로 오갔다. 최 검사는 “묵시적 압박으로 법원에서 제약사들의 유죄판결을 이끌어 내기는 어렵다”고 말했지만 이미 나온 형사 판결에 따르면 충분히 인정되고 있는 셈이다. 건강보험공단만 1200억 손실 검찰뿐 아니라 법원 판결에서도 생동성 시험 조작에 관련된 제약사들이 면죄부를 받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금전문제와 상관없는 형사재판이나 행정소송에서는 제약사의 책임을 언급하거나 인정한 판결이 나온 반면 오히려 건강보험 약제비 환수와 직접 관련이 있는 민사재판에서는 갖은 이유로 제약사들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서울중앙지법과 서울서부지법에서 1심 판결이 나온 15건의 민사소송(전체 44건)에서 제약사의 배상이나 부당이득반환을 인정한 것은 단 한 건도 없다. 15건 중 손해배상책임이 일부라도 인정된 것은 5건인데 모두 시험기관과 시험기관 관계자들에게만 책임을 인정해 전체 손해액의 약 30% 정도를 배상하도록 했다. 배상책임은 검찰에 의해 조작 혐의로 기소돼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들에 한해 인정됐다. 검찰에 이어 법원 역시 “시험조작 사실을 몰랐다”는 제약회사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건강보험 재정만 큰 손실을 입게 됐다. 건강보험공단은 보건복지부의 지침에 따라 2008년부터 94개 제약회사에 1,184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건강보험공단이 제약사들을 상대로 제기한 약제비 환수 소송에서 줄줄이 패소하면서 제약사들이 문제가 된 약을 팔아서 챙긴 1,200억원 가량의 건강보험 약제비를 대부분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복제약을 믿을 수 없다”며 원본자료 미확보 등의 이유로 허가취소가 되지 않은 576개 품목에 대해 자료공개 소송을 내 승소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제약회사들은 “약효와 상관없는 작은 오차가 다수”라고 주장, 제약회사들에만 면죄부를 준 것 아니냐는 의혹이 다시금 일고 있다. 김희정 기자 penmoim@sisakorea.kr <저작권자 ⓒ 시사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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