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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 없는 장자연의 ‘다잉 메시지’

고 장자연 자필편지 성접대 명단 폭로 파문

고승주 기자 | 기사입력 2011/03/15 [14:45]

응답 없는 장자연의 ‘다잉 메시지’

고 장자연 자필편지 성접대 명단 폭로 파문

고승주 기자 | 입력 : 2011/03/15 [14:45]
[시사코리아=고승주기자] “저는 나약하고 힘없는 신인배우입니다.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재계약 문제로 괴로워하다 지난 2009년 3월 7일 스스로 목을 매 자살한 배우 고 장자연(당시 29)씨의 새로운 사연이 2년이 지난 최근 SBS 8 뉴스에서 공개돼 주목을 끌었다. SBS는 장씨의 자필 편지 50여통을 입수해 보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     © 운영자

접대받은 기업인 등 리스트 실명 담겨 “복수해 달라”
“부모님 제삿날 막론하고 31명에게 100여차례 성접대

 
SBS 보도에 따르면 편지는 신인 연기자였던 시절인 2005년부터 쓰기 시작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2009년 초까지 계속됐다. 총 230쪽의 편지내용엔 “연예기획사와 제작사, 대기업, 금융기관 관계자에게 100번 이상 접대를 했다”며 “부모님 제삿날에도 접대자리에 내몰렸다. 이들은 악마”라고 표현했다.

편지에는 ‘복수해 달라’는 문구도 수차례 포함됐다. 장자연이 자살을 언급한 편지에는 ‘연락이 없더라도 복수해 달라. 하늘에서도 복수하겠다’ 등의 내용이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씨의 전 소속사 대표인 김모(42) 씨도 술접대 강요 등의 혐의로 경찰에서 조사받으면서 모 언론사 관계자와 가진 술자리에 장씨와 동석한 사실은 인정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8일 김 전 대표의 형사재판 기록에 따르면, 장씨는 자살하기 두 달 전인 2009년 1월 지인에게 보낸 친필 편지에서 “…날 넘 힘들게 한 사람들…다이어리 노트 보여 주려고 그래…결정한 건 아니구 일단 날 변태처럼 2007년 8월 이전부터 괴롭혔던…. …지금은 이름만 적어서 보낼게…31명…감독·PD들은 가장 마지막에 따로 쓸게…”라고 적었다.

장씨는 이어 “일단은 금융회사 미친XX, 글구 인터넷 신문사 대표, 대기업 대표, 대기업 임원·간부, 일간지 신문사 대표는 아저씨에게 1번으로 복수를…”이라고 덧붙였다. 게다가 이번 편지에는 기획사와 제작사, 금융기관, 언론사 관계자 등 31명의 실명이 언급되어 재수사하자는 여론도 일고 있다. 하지만 이 재판기록에는 명단이 구체적으로 언급됐을 것으로 보이는 부분이 ‘중하부 생략’이란 표시와 함께 빠져 있어 내용을 파악할 수 없었다.

또 장씨가 자살하기 일주일 전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친필 편지에는 본인의 ‘피해사례’라고 언급한 부분에서 “2008년 9월경…룸싸롱 접대에서 저를 불러서…잠자리 요구를 하게 만들었습니다. 그후 몇개월 후 김○○ 사장이…만들어 룸살롱에서 술접대를…”라고 적혀 있었다.

경찰의 사건 은폐의혹 제기

SBS는 경찰의 사건 은폐의혹도 제기했다. “경찰이 수사의 핵심단서가 될 이 편지의 존재를 알고 있으면서도 압수수색을 하지 않았다”며 “수사를 제대로 진행하지 않고 빨리 끝내려고 한 은폐의혹이 짙다”고 주장했다.

SBS는 “이 편지들을 장자연 본인이 작성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공인 전문가에게 필적 감정을 의뢰했다”며 “장자연의 필체가 맞다는 결과를 얻었다”고 전했다. SBS에 이 편지를 건넨 제보자 A씨는 사건이 일어난 2009년 3월에도 고인의 자필 편지를 몇몇 언론사에 전달한 동일 인물인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 “제보자 A는 교도소 수감 중인 정신병자”

이에 경찰도 입장표명에 나섰다. 이명균 강원 삼척경찰서장(당시 경기지방경찰청 강력계장)은 7일 오전 한 언론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번에 SBS에 문건을 제보한 A씨는 1996년도부터 2003년까지 수감돼 있다 석방 20일 만에 재수감돼 현재도 수감 중”이라며 “장자연과 접촉 자체가 불가능했을 뿐만 아니라 학연이나 지연 등 연결고리 자체가 없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여러 정황 증거를 바탕으로 당시 수사 결과 브리핑에서 “A씨가 고 장자연의 편지라고 주장한 문건은 가짜”라며 “A씨는 고인과 일면식도 없는 정신병자”라고 밝힌 바 있다.

이 서장은 “그가 고인과 50통의 편지를 주고받았다고 하는데 고인의 사망 사건 수사 당시 자택 압수수색에서 편지를 주고받은 흔적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며 “본인은 유족에게만 공개하겠다고 했는데 이후에도 유족에게 공개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일단 문건이 나왔다니 진위 여부부터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겠지만 고인의 2주기를 맞아 이런 문건이 공개됐다는 것 자체가 여러모로 석연치 않다. 무엇보다 경찰이 당시 사건을 은폐하려했다는 것 자체가 억지다”라고 말했다.
 
연예매니지먼트법 입법 표류

한편 장씨의 죽음 후에도 연예계엔 별다른 예방조치가 없는 것으로 드러나 또 다른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2009년 3월 25일 최문순(당시 민주당) 의원이 제안해 문화체육관광부가 발의한 ‘연예매니지먼트법’안은 무분별하게 난립하는 연예기획사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마련된 법안이었지만 한국연예매니지먼트협회 등이 연예기획사 등록제 등에 거세게 반발해 이후 입법에 대한 추가 논의가 진행되지 못했다.

‘연예인 인권 문제’에 대한 실태 조사도 마찬가지였다. 2009년 6월부터 국가인권위원회가 ‘여성 연예인 인권상황 실태조사’에 나섰지만, 이에 응하는 연예인은 없었다. 이에 인권위는 조사 기간을 연장하고 그해 9월부터 여성 연예인에 대한 성폭력, 성상납 및 성접대 강요 등 인권 침해 사례에 대한 ‘특별 인권상담 및 제보 접수’를 시작했지만 성과는 없었다. 지난해 4월 인권위는 여성연기자 111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는 조사에 어려움이 커 방송 출연 경험이 있는 연극영화과 학생 등으로 대상이 제한했음에도 불구, 10명 가운데 6명이 “성접대 제의를 받은 적이 있다”고 응답해 충격을 줬다.

한국방송예술인노조(한예조)는 당시 ‘연예인 인권교육·상담지원센터’를 만들겠다고 밝혔지만, 이마저도 문화체육관광부가 편성하려던 예산이 국회에서 전액 삭감되면서 무산됐다. 한예조 관계자는 “문화부에서 예산을 지원해 센터를 만들려고 했지만 결국 예산 확보에 실패해 없던 이야기가 됐다”고 했다. 문화부 관계자도 “대중문화예술인 지원센터 설립 예산으로 10억원을 편성했고 공감대도 충분했는데 지난해 예산안이 날치기 통과되면서 관련 예산이 없어져버렸다”고 말했다.

이처럼 열악한 구조가 개선되지 않으면서 연예계에서는 비슷한 사건이 이어졌다. 지난해 1월 방송 출연 등을 미끼로 소속사 연예인에게 성상납을 강요한 소속사 대표에게 법원이 징역 4년을 선고했고, 10월에는 한 연예기획사 대표가 소속사 가수 지망생들에게 성상납을 강요한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고승주 기자 gandhi55@sisa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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