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코리아=고승주기자] 만날 시간도, 만날 기회도 없다. 여친없는 남성 직장인의 이야기다. 주위에선 선보라며 성화지만 이들이 원하는 건 부담없이 솔직한 심정을 토로할 수 있는 상대다. 그러다보니 신분이 드러나지 않는 인터넷 채팅은 외로움을 달래는 손쉬운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처음엔 남모르는 여성과 이야기 해본다는 호기심으로 시작하지만, 하면 할수록 상대에 몰입해가고, 때때로 앳띤 여성의 요청엔 귀가 솔깃해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취약점을 틈타 연간 1만 5000건에 달하는 인터넷 꽃뱀 사건이 터지고 있다.
사진도용·가짜성별·허위신분…날로 진화하는 꽃뱀수법 수년간 7300만원 뜯어낸 수법…호기심으로 접했다가 돈까지 잃어 인터넷 꽃뱀의 타겟은 직장인 남성이다. 외로움과 직장 스트레스로 푸념을 늘어놓는 사람은 1차 작업 대상이 된다. 입맛별로 분류하자면 부식(미혼남성)과 특식(유부남), 그리고 별식(독신남)으로 나쥔다. 특히 선호하는 메뉴는 30대 초중반의 특식을 즐겨 찾는다. 젊으면서도 경제적 여유가 생기기 시작하는 시기이기 때문. 시선고정, 섹시 어필을 위해 사진은 필수다. 사진공개는 남녀 공통으로 할 수 있지만 여성은 자신의 얼굴이나 특정신체부위를 내놓는 것이 상식이다. 때론 상대에게 색다르고 섹시한 모습이나 심지어 은밀한 부위를 찍은 사진을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꼭 자신이 예쁠 필요는 없다. 예쁜 얼굴을 가진 사람의 얼굴을 써도 확인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지난 달 28일 제주지방경찰청에선 7년여 동안 모두 4명의 남성들로부터 7300여만원 상당을 편취해온 박모(여·31)씨가 그러한 경우이다. 박씨는 인터넷 미니홈피 ‘싸이월드’ 등에 미모의 여성사진을 등록한 후 남성들과 채팅시 자신이라고 속였다. 2003년 3월경 김모씨(31)에게 미모의 박씨에게 홀려 사이버 상에서 교제를 시작했다. 박씨는 김씨와 8여년간 교제하는 동안 “아파서 병원에 가야한다”, “엄마가 아픈데 돈이 없다”, “만나려고 하는데 차비가 없다”는 등 갖가지 거짓말로 1회에 1만원에서 100만원까지 3년간 636차례에 걸쳐 3350만원을 받아냈다. 수년간 금품을 바친 김씨는 만나는 것을 차일피일 미루는 박씨에게 금품을 건네주다 결국 실제 만남을 가지게 된 후에야 전모를 파악하게 되었다. 박씨의 경우는 인터넷 꽃뱀들이 어떻게 상대를 다루는지를 잘 보여준다. 흔히 꽃뱀들은 성매매 거래 후 가족을 위장한 폭력배가 현장을 덮치는 방법을 쓴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건 전문 공갈단의 이야기이다. 공범이 없으면 안 되고 상대를 협박, 공갈해야 하기 때문에 단독으로 움직이는 꽃뱀에게는 기피 수단이다. 박씨와 같은 스타일의 인터넷 꽃뱀들은 일단 먹잇감으로 판명나면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 상대가 제아무리 구질구질한 이야기를 꺼내도 끝까지 들어준다. 상대가 힘들어 하면 격려까지 해주는 세심함으로 환심과 사고 경계심을 누그러뜨린다. 실제로 전직 꽃뱀이었던 전모(여·24)씨는 대세는 애인대행이라고 고백했다. 짧게 먹고 튀는 게 아니라 지속적으로 먹고 단칼에 튀는 것이다. 전씨는 “장기간 교제하는 것이 더 좋다”며 “상대가 뭐라 하든 난 딴 일을 하며 맞장구만 치면 되고, 수없이 상대를 갈아 치우는 것보다 관리하기도 편하다”고 전했다. 한편 다른 3명도 2~3년동안 박씨와 장기간 교제를 하면서 믿고 돈을 보냈다. 그렇게 합친 금액은 무려 7300여 만원. 박 씨의 행적은 경찰조사로 끝이 났지만, 뒷끝은 좋지 않았다. 배신당한 남성들이 “아픈 과거를 들추고 싶지 않다”며 경찰에게 진술을 거부한 것이다. 탓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끈질긴 설득 끝에 겨우 수사의 가닥을 잡을 수 있었다. 애교·동정심 활용 말솜씨는 수금단계까지 가는 결정적 수단이다. 대개 귀염성있고 애교있는 말투면 합격점이 나오지만, 돈을 끌어내기 위해선 애교만으로는 부족하다. 두 자녀를 둔 가정주부 허씨의 고정적인 꼬시기(?) 수법은 자랑이었다. 허씨는 자신이 “육군소장 출신 아버지의 외동딸이며 작은 아버지가 대검찰청 검사이고 자신은 서울에서 금은방 4곳을 운영하고 있다”며 거짓말로 신분을 과시했다. 얼굴사진은 친구 중 미모의 언니를 골라 젊었을 때 얼굴사진을 이메일로 보냈다. 자기과시는 사기꾼의 흔해빠진 레퍼토리지만 효과가 있다. 피해자는 막대한 재력에 질리게 되면 검토없이 상대방을 믿게 된다. 어설프게 10억 같이 현실적인 숫자는 가급적 내놓지 않는다. 허씨는 대전에서 자영업을 하는 최씨에게 결혼약속까지 하며 1회당 100~300여만원의 용돈을 지속적으로 받아왔지만 거짓이 탄로날 기미를 보이자 재빨리 소식을 끊고 달아났다. 반면 불쌍한 처지를 호소하는 여성도 있다. 프로필에 미모의 여성 사진을 올린 정모씨는 “서울에서 왔는데 지갑을 분실해 교통비가 필요하다”고 속여 5만원을 송금 받는 등 3년 동안 모두 350여명의 남자들로부터 비슷한 수법으로 1000여만원을 뜯었다. 경찰은 소액의 피해였던 탓에 드러나지 않은 건수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사건의 가장 기가 막힌 점은 정씨가 남자였던 것이다. 역시 얼굴을 직접 확인할 수 없는 인터넷 공간이어서 가능했다. 단계적으로 금품 요구 이들이 돈을 요구하는 수법은 실로 단계적이다. 그들은 처음부터 상대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상대에게 최대한 환심을 끌기 위해 소정의 선물을 보내기도 한다. 피해자는 체면상 보답을 하려 하지만 거절의 뜻을 표하기도 한다. 그러면 상대의 부담감이 커진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피해자의 애타는 마음이 절정까지 오르는 데는 약 1~2개월. 그 다음은 본격적인 요구로 들어간다. 여기에도 유형이 있다. 용돈, 기념일용으로 거액에서 푼돈까지 긁어내는 철면피형, 돈을 빌려가서 칼같이 이자를 갚지만 거액을 빌리게 되면 바로 사라지는 빚쟁이형, 불륜을 미끼로 노골적으로 요구하는 갈취형이 그것이다. 38세 유부남 박씨는 빚쟁이형에게 걸려 3억원을 빼앗겼다. 이들은 일반적으로 대포통장과 대포폰을 사용하고 심지어 수시로 거주지를 옮기도 했다. 나중에 전화번호로 추적을 하려고 해도 수화기 저 편에서는 “고객의 사정상 착신이 불가능한 전화”라는 메시지만 흘러나올 뿐 행적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 돈만 잃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유부남이 잘못 빠지면 자칫 평생의 굴레가 되기 때문이다. 고승주 기자 gandhi55@sisakorea.kr <저작권자 ⓒ 시사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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